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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7 RhapsoDJ의 요청, replaced: {{ja-y → {{llang|ja using AW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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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무라 유키오'''({{llang|ja-y|西村 幸生|にしむら ゆきお}}, [[1910년]] [[11월 10일]] ~ [[1945년]] [[4월 3일]])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다.
 
주전 투수로 대학 야구의 간사이 대학, 직업 야구의 [[한신 타이거스|오사카 타이거스]]에서 활약하며 명문 팀의 황금 시대를 구축했다. 현재는 '''"주선(酒仙) 투수"'''라고 불리는 경우도 많다. 조카인 니시무라 다카아키는 이세 시내에서 장어 요리점을 운영하고 있다.
때마다 서로 엎치락뒤치락 싸움을 하는 등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시모토 슈이치]](재적 당시 타이거스의 감독)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투수를 봐왔지만, 컨트롤은 [[이나오 가즈히사]]와 니시무라가 쌍벽이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경기에서 승리하여 얻은 상금으로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한 것으로부터 야구 평론가인 [[야마토 교지]]는 주전 투수를 모방해 발음이 비슷한 '주선(酒仙) 투수'로 명명했다. 따라서 애주가라는 인상이 실제보다 강했고 연습도 대중 앞에서는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성실한 선수로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타이거스의 동료였던 [[와카바야시 다다시]]나 [[마쓰키 겐지로]]는 애주가라고는 해도 폭음은 하지 않았던 것이나 혼자서 여분 런닝을 달렸던 것으로 증언하고 있다. 마쓰키는 니시무라가 숙소 료칸에서는 금주의 규칙을 지키고 있었다고 적고 있다.
 
[[스즈키 류지]]는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고시엔 역]] 근처의 가드 아래 술집에서 마시고 있으면 니시무라가 [[가게우라 마사루]]와 [[쇼치쿠 로빈스|라이온군]]의 [[미즈타니 노리카즈]]나 다른 선수들도 취한 채로 나타나 "나도 마시고 있습니다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취해도 던지는 것은 제대로 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스즈키가 먼저 숙소에 돌아와서 경찰에서 세 사람이 날뛰고 있다는 전화를 받고 스즈키는 경찰에 사과를 하고 데려왔다. 다음날 경기에 선발 등판한 니시무라는 훌륭한 피칭을 거두었다. 이에 스즈키는 니시무라를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쾌남아였다"라고 적고 있다<ref> 마쓰키 겐지로 저 《타이거스의 성장》(고분샤, 1973년), p.155</ref>.
 
호방한 것으로 보였지만 영어 회화를 잘하는 부인(일본계 2세)는 간사이 대학의 하와이 원정 때 알게 되었다. 부인의 말을 빌리면, 가정에서는 자식을 잘 아끼는(4명의 딸이 있었다) 아버지였다고 한다. 부인은 전후 하와이로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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