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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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크라이나 영토는 [[슬라브인]]들의 첫 국가인 [[키예프 공국]]의 남쪽 지방이었다. 이 중세 국가의 수도는 현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예프]]였다. 키예프 공국은 현재의 [[스웨덴]] 영토에서 온 바이킹들이 세웠으며 이들은 현지의 슬라브인들인 [[루시 민족|루시]]에 흡수되었다. 이들은 강력한 [[류리크]] 왕조를 세웠다. 그리하여 10세기와 11세기에는 우크라이나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의 중심부가 되어 후의 우크라이나 국가 정체성 형성의 바탕이 되었다.
 
키예프 공국은 내부 분열과 [[몽골]]의 침략으로 멸망했다붕괴했다. 우크라이나 땅에는 [[갈리치아]](Galicia, Halych)와 [[볼히니아]](Volhynia, Volodymyr-Volynskii) 두 공국이 그 뒤를 이었다. 갈리치아와 볼히니아는 합쳐졌다 분열되고 결국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 의해 정복되었다.
 
17세기 중반에는 우크라이나 중부에 [[코자크 헤티만국]](Cossack Hetmanate)이 세워져 백년 이상 모스크바 공국(Muscovy)의 압력을 견뎌냈으나 결국 우크라이나는 [[폴란드]]와 [[러시아]]에 의해 분할되었다. 그 후 18세기 후반의 [[폴란드 분할]]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중부와 동부는 [[러시아 제국]]에 합병되고 서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합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