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우로시 4세 두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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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과 초기의 통치 ==
아버지인 [[스테판 우로시 3세|스테판 우로시 3세 데찬스키]]는 그의 아버지 [[우로시 2세|우로시 2세 밀루틴]]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가 아버지 밀류틴에게 패하고 [[비잔티움 제국|비잔티움]]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추방당했고, 어린 두샨은 부모와 함께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살아야했다. 두샨은 후일 왕이 되자 [[비잔티움 제국|비잔티움]]에서 배운 교육을 바탕으로 통치한다. [[1321년]] 밀류틴이 죽기 직전 밀류틴과 데챤스키가 화해하고 데챤스키는 눈이 기적적으로 나았다고 주장하고 장님이 아닌 것을 입증해 세르비아 왕이 되었다. 두샨은 왕세자가 되어 [[아드리아 해|아드리아]] 해안가를 통치했는데, 그는 보스니아군과 싸우면서 유능한 지휘관이라는 평판을 얻고, [[1330년]] [[벨부즈드 전투]]에서 [[제2차 불가리아 제국|불가리아 제국]]을 격파하고 [[불가리아의 군주|차르]] [[미하일 시스만시슈만]]을 살해했다. 그 직후 그는 아버지와 불화하여 [[1331년]] 아버지를 내쫓고 왕위에 올랐다. 그는 불가리아의 새 차르 [[이반 알렉산다르]]의 누이 엘레나와 결혼하여 불가리아와의 관계를 개선했다. 그러나 그는 비잔티움 제국에 대한 정복을 1334년부터 시작하였다. 그는 그해 8월에 이미 세르비아의 영토를 [[마케도니아 지방]] 북부까지 확대했으며, 헝가리의 침입을 막아내었다. 그는 남부의 그리스쪽으로는 끊임없이 진출하였으나 북부 헝가리 쪽에서는 방어에 전념하여 다뉴브 국경선을 유지하였다.
 
== 정복과 업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