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국 시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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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이후에도 대한민국에서는 이 시기를 일반적으로 '통일신라 시대'라고 부르며 발해에 관해 어두웠으나, [[1980년대]]부터 발해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1990년대]] 들어 남북국 시대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학자들 사이에 발해사는 중국사의 일부로, 한국사에 포함할 수 없다는 주장이 있으나,<ref>{{뉴스 인용|제목=중국, 발해사 포함 고대사 송두리째 왜곡|url=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54313.html|출판사=한겨레신문|저자=박기성 특파원|날짜=[[2006년]] [[9월 5일]]|확인일자=[[2009년]] 11월 10일}}</ref> 한국 사학계에서는 대체적으로 이러한 중국 사학계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통일신라 시대'라는 용어는 발해를 배제하고 신라만을 정통 역사로 인정, "신라신라가 삼한을 하나로 통합하다"(統一)라는 뜻이므로 발해가 빠져제외되어 있다. 때문에 한국의 사학계에서 스스로 발해를 외면했다는 이유로 중국 일부 사학계의 [[동북공정]]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쓰이고 있다. 실제로 중국학계에서는 현재 "통일된 신라"(统一的新罗)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때문에 한국학계 일부에서는 최초의 역사적 통일은 신라가 아닌 [[고려]]가 이루었다고 보는 반성도 일어나고 있다. 실제로비록 인도주의적인 형태였지만, [[고려 태조]] 왕건은 [[926년]] 발해가 멸망하자, 왕자934년, 태자 [[대광현]]을 비롯한 발해계발해 유민들을 수용하였고, 대광현에게 왕씨 성을 주어 왕족에 버금가는 반열에 들게 하였다.
 
==통일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