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국 시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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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기 ==
신라는 [[고구려]] 및 [[백제]]와의 전쟁이 끝나자 내실을 기하기 위해 국가제도를 개혁하였고, 강화된 왕권으로 귀족들을 억눌렀다. 또한 인구 증가와 생산력 향상에 따라 조세가 늘어나자 수도를 정비하고 대대적인 토목공사를 벌였다. 그 무렵 만주에서는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났다. 698년, [[발해 고왕]]이 고구려의 유민들과 말갈인들을 규합하여, [[읍루]]의 동모산을 차지하여 진국을 건국하고, 곧 말갈이라는 명칭을 버리고, 발해로 국호를 바쑤어바꾸어 고구려의 계승국임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이때부터 [[한국]] 남북국사관에서남북국사관론에서 [[북국]] 발해와 [[남국]] 신라라는 남북국 시대가 탄생했다탄생한 것이다.
 
서기 [[900년]], 신라는 [[견훤]]이 서남부에 [[후백제]]를 건국하면서 분열이 시작되었고, 이듬해, [[궁예]]가 신라의 북부에서 [[후고구려|고려]]를 건국하면서 [[후삼국 시대]]에 돌입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 때부터 남부의 신라가 분열되어 [[후삼국 시대]]가 전개되어 남북국 시대의 양상과 사실상 병존하였다. [[918년]]에 [[태봉]]의 [[고려 태조|왕건]]이 [[궁예]]를 축출하고 왕위에 올라 [[고려]]로 국호를 환원하고, [[926년]]에 북국인 발해가 멸망하자 남국의 [[고려]]에서는 934년, 발해의 태자 [[대광현]]을 비롯한 발해 유민들을 인도주의적으로 수용하기도 하면서 국내에서 삼한을 일통한 [[고구려]]의 계승국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