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골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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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골제'''(碧骨堤)는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에[[부량면]]에 위치한 저수지로[[저수지]]로 [[대한민국]] 저수지의 효시이고, 고대 수리시설 중 규모도 가장 크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111호로 지정되었다.
 
==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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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생거 ==
신증동국여지승람의[[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따르면 벽골제에는 총 5개의 수문이 있었고, 수문 명칭은 수여거, 장생거, 중심거, 경장거, 유통거라고 한다. 그 중 현재 제방과 함께 남아있는 수문은 두 개소로 단지 내 장생거와 단지 밖 벽골제 제방을 따라 남쪽으로 약 2km에 위치한 경장거이다. 1980년대 수문 일부 복원 공사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ref name="현지">현지 안내문 인용</ref>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린 벽골제중수비의[[벽골제중수비]]의 기록에 지방의 단면과 수문구조가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ref name="현지" />
{{인용문|둑의 아래 넓이는 70자료, 위의 넓이는 30자이며, 높이가 17자이고 수문은 마치 구롱(九壟)처럼 보였다. ···또 (수문) 양쪽의 석주심(石柱心)이 움푹 들어간 곳에는 느티나무 판을 가로질러서, 내외로 고리와 쇠줄을 달아 나무판을 들어올리면 물이 흐르도록 하였으니, 수문의 넓이는 모두가 13자요, 돌기둥의 높이는 15자이며, 땅속으로 5자나 들어가 있다. ···이것이 벽골제의 대략이니 때는 [[영락]](永樂) 13년(명의 연호 태종 15년, 서기 1415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