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향 장기수: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2번째 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1973년부터 법무부와 중앙정보부가 조직적으로 비전향 장기수에 대한 옥중 전향공작을 펼쳤으며 이 과정에서 폭력전과자를 활용한 상습폭력으로 장기수들이 사망했다"고 2002년 8월 29일 발표했다. 진상규명위원회는 1955년 국가보안법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대전교도소에 복역중이던 최석기 박융서 손윤규 사건 등 비전향 장기수 전향공작과 옥중사망 의문사 사건 중간발표에서 법무부와 중정은 교도소 내에 좌익수전향공작전담반을 설치하고 비전향 장기수에 대한 조직적 전향공작과 고문,폭력을 행사해 이 과정에서 이들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특히 최석기는 "격리사동에서 입에 수건이 물리고 바닥에 뉘어진 상태에서 폭력전과자 조모씨의 극심한 폭행으로 숨졌다"는 사실을 공개하면서 “당시 교도소 보안과장은 최씨의 유족에게 ‘잠만 자는 병에 걸려 사망했다’고 말하는 등 사실을 은폐했으며 최씨를 폭행했던 조씨는 전향공작의 공적을 인정받아 교도소에서 결혼하고 만기보다 4년 일찍 출소하는 등의 특혜를 받았다”고 말했다.<ref>국민일보 국제>유럽_EU | 국제>미국_북미 | 국제>아시아] 2002-08-30</ref>
 
== 역사 ==
* [[1991년]] [[2월 25일]] 광복 직후부터 ‘좌익활동’을 하다가 1955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된 허영철 71살에 특별 가석방
줄 8 ⟶ 9:
* [[2000년]] [[9월 2일]] - 송환을 희망하는 63명 송환
* [[2005년]] [[10월 2일]] - 사망한 [[정순택]]의 시신 송환
* [[2017년]] [[3월 25일]] - 1960년 6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돼 1991년 12월까지 31년6개월을31년 6개월을 구속, 정부의 강제전향 압박을 거부하다 2002년 [[사면]]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전북본부 고문을 맡은 박봉현(98) 사망<ref>[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788008.html]</reF>
 
== 2000년 송환된 63명 명단 ==
줄 82 ⟶ 83:
== 석방된 장기수 ==
<small>(체포된 연월일 ~ 석방된 연월일)</small>
* [[김선명]] 1951년 10월 15일 ~ 1995년 8월 15일 (43년 10개월 복역으로 최장기 복역)
* [[최수일]] 1965년 3월 5일 ~ 1999년 2월 25일
* [[안학섭]] 1953년 3월 ~1995년 8월 15일
줄 95 ⟶ 96:
* [[임병호]] 1959년 9월 27일 ~ 1991년 12월 24일
* [[한장호]] 1957년 11월 20일 ~ 1995년 8월 15일
* [[박완규 (1929년)|박완규]] 1967년 9월 9일 ~ 1999년 2월 25일
* [[방재순]] 1953년 8월 ~ 1991년 2월 25일
* [[이공순]] 1967년 12월 10일 ~ 1999년 2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