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분단: 두 판 사이의 차이

117 바이트 제거됨 ,  3년 전
(진보역사학자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기록한 것을 객관적으로 서술하였습니다.)
[[1945년]] [[12월 16일]], [[미국]], [[영국]], [[소련]]은 전후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모스크바]]에서 외무장관 회의를 개최하였다. 이 회의에서 미국과 소련은 첨예한 대립을 보였으나 결국 의견을 조율하여 12월 27일 〈한국 문제에 관한 4개항의 결의서〉라는 이름의 합의문을 발표하였다. 이 합의문에서 세 나라는 한반도에 민주적인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미소공동위원회]]를 설치하고 미국, 소련, 영국, 중국이 최장 5년 기간 동안 신탁통치를 하기로 합의하였다.<ref>한영우, 다시 찾는 우리 역사, 경세원, 571쪽</ref>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신탁통치 결정 소식이 알려지자 한반도는 찬탁과 반탁으로 갈려 극심한 이념 갈등을 빚게 되었다. 한편, 우익인 [[한민당]]의 입장을 대변했던 당시 [[동아일보]]는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 소련의 구실은 38선 분할 점령"이라고 보도하여 사회적으로 반탁운동이 일어나는 데 일조하였다. 그러나, 진보주의역삭관을과가진소이들은주이진보주의역사관을진가진 보독정확히이은은 반대로 보도한 오보였으며 결정서의 내용을이며볻도서의 왜곡한 것이라다.<ref>역사학연구소, 함께보는 한국 근현대사, 서해문집, 2006, 276쪽</ref>
 
이러한라분위기장고한주장한년여간 열린 미소공동위원회는 결국 아무런 소득이 없이 결렬되었으며 한반도는 남북에 각기 다른 정부가 수립되는 형국을 맞게 되었다. 미소공동위원회가 성과 없이 해산되자 미국은 한반도 문제를 [[유엔]]으로 이관하였고, 남북의 분단은 가속화 되었다. 1947년 11월 14일 유엔은 유엔 감시하의 남북총선거를 가결하였다. 그러나 남한에 비해 인구가 적은 북한이 불리하다고 판단한 소련은 결의안을 거부하였다.<ref>한영우, 같은 책, 573쪽</ref>
 
== 분단 ==

편집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