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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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는 26권 10책으로 되어 있다. 정본 없이 필사본으로만 전해져오다가 [[1901년]] [[김택영]]이 처음 간행하였는데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 친필본이 [[단국대학교]] 〈연민문고〉에서 발견되었다. <ref name="친필본"/>
 
====== 도강록 ======
압록강으로부터 랴오양(遼陽)에 이르는 15일간의 기록으로 성제(城制)와 벽돌 사용 등의 이용후생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 성경잡지 ======
십리하(十里河)에서 소흑산(小黑山)에 이르는 5일간에 겪은 일을 필담(筆談) 중심으로 엮고 있다.
 
====== 일신수필 ======
신광녕(新廣寧)으로부터 산하이관(山海關)에 이르는 병참지(兵站地)를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 관내정사 ======
산하이관에서 연경(燕京)에 이르는 기록이다. 특히 백이(伯夷)·숙제(叔齊)에 대한 이야기와 「호질 虎叱」이 실려 있는 것이 특색이다.
 
====== 막북행정록 ======
연경에서 열하에 이르는 5일간의 기록.
 
====== 태학유관록 ======
열하의 태학(太學)에서 머무르며 중국학자들과 지전설(地轉說)에 관하여 토론한 내용이 들어 있다.
 
====== 구외이문 ======
고북구(古北口) 밖에서 들은 60여 종의 이야기를 적은 것.
 
====== 환연도중록 ======
열하에서 연경으로 다시 돌아오는 6일간의 기록으로 교통제도에 대하여 서술.
 
====== 금료소초 ======
의술(醫術)에 관한 이야기.
 
====== 옥갑야화 ======
역관들의 신용문제를 이야기하면서 허생(許生)의 행적을 소개하고 있다. 뒷날에 이 이야기를 「허생전」이라 하여 독립적인 작품으로 거론하였다.
 
====== 황도기략 ======
황성(皇城)의 문물·제도 약 38종을 기록한 것.
 
====== 알성퇴술 ======
순천부학(順天府學)에서 조선관(朝鮮館)에 이르는 동안의 견문.
 
====== 앙엽기 ======
홍인사(弘仁寺)에서 이마두총(利瑪竇塚)에 이르는 주요명소 20군데를 기술한 것이다.
 
====== 경개록 ======
열하의 태학에서 6일간 있으면서 중국학자와 대화한 내용을 기록하였다.
 
====== 황교문답 ======
당시 세계정세를 논하면서 각 종족과 종교에 대하여 소견을 밝혀놓은 기록이다.
 
====== 행재잡록 ======
당시 청나라 고종의 행재소(行在所)에서 견문한 바를 적은 것이다. 그 중 청나라가 조선에 대하여 취한 정책을 부분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 반선시말 ======
청나라 고종이 반선(班禪)에게 취한 정책을 논한 글이다.
 
====== 희본명목 ======
다른 본에서는 「산장잡기」 끝부분에 있는 것으로 청나라 고종의 만수절(萬壽節)에 행하는 연극놀이의 대본과 종류를 기록한 것이다.
 
====== 찰십륜포 ======
열하에서 본 반선에 대한 기록이다.
 
====== 망양록과 심세편 ======
각각 중국학자와의 음악에 대한 토론내용과 조선의 오망(五妄), 중국의 삼난(三難)에 대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 곡정필담 ======
천문에 대한 기록이다.
 
====== 동란섭필 ======
가악(歌樂)에 대한 잡록
 
====== 산장잡기 ======
열하산장에서의 견문을 적은 것이다.
 
====== 환희기와 피서록 ======
각각 중국 요술과 열하산장에서 주로 시문비평을 가한 것이 주요내용이다.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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