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 소제 (13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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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탁]]이 휘하 군대를 이끌고 [[북망산]]에서 소제와 진류왕을 영접하여 [[낙양]]으로 환궁했다. 소제는 두려움에 울기만 할 뿐 제대로 얘기하지 못하는 반면에 유협은 차근차근 얘기하는데다 동탁과 같은 [[성씨]]인 [[동태후 (후한)|동태후]]가 길렀으므로 폐립할 뜻을 품었다.<ref>《후한서》72권 열전 제62 동탁</ref> 9월 갑술일 홍농왕(弘農王)으로 강등당하고 유협이 황제에 올랐다.
== 죽음 ==
[[190년]]([[초평]] 원년) 1월(음력) 1월 동탁의 횡포에 [[반동탁 연합군]]이 일어났다. 동탁은 낭중령(郞中令) [[이유 (후한)|이유]]로 하여금 소제를 독살하도록 하였다.(1월 25일) <ref>《[[후한서]]》 〈[[:s:zh:後漢書/卷9|제9권]]〉 “初平元年春正月[...]癸酉,董卓殺弘農王。”</ref> 이유는 소제에게 독약을 바치며 말하였다.
{{인용문2|이 약을 드시면 병환이 낫게 될 것입니다.}}
소제는 꿍꿍이를 알아차리고 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