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섬: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인도네시아 어는 자음+모음으로 읽고... T=ㅌ 이 아니고 ㄸ으로 발음합니다. 그리고 각 단어에서 이중모음으로 읽지 안습니다.. 예 Tanggung 땅궁이고 Tangung g자가 하나일경우 = 땅웅으로 발음합니다.
덴파사 → 덴파사르
76번째 줄:
1942년 2월, 일본군이 발리를 침공하였다. 네덜란드 군이 주둔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군에 거의 피해없이 발리 해전에서 승리했고 불과 20일만에 네덜란드 군은 항복했다. 처음에는 식민지에서 해방되었다고 반겼지만, 네덜란드의 식민지 지배와 다를 바가 없었고, 전쟁으로 인한 현지인들의 징발로 인해 불만이 증폭되었다. 그 당시 육군 장교였던 [[구스티 응우라 라이]]는 발리인들과 함께 자유군을 결성했다. [[1944년]] 중반에 자바와 연계한 항일운동이 전개되었고, 같은 해 9월, 인도네시아 독립을 용인하는 코이소 성명이 발표되었고, [[1945년]] 4월 [[수카르노]]가 발리에 찾아와 인도네시아 독립의 필요성을 연설하였다. 민족 단합의 기운이 갑자기 높아지면서 7월에 "소순다 건국 동지회"를 결성하였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을 하자, 네덜란드는 빠르게 발리로 돌아왔다. [[1945년]] [[8월 17일]], [[자카르타]]에서 [[수카르노]]가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소순다 국가"로 발리에서는 친공화국 파에 의한 통치 체제의 확립이 기획되어 있었다. 그러나 전쟁 이후의 구체제의 붕괴가 진행되지 않고, [[1946년]] 3월 다시 네덜란드가 상륙을 하자, 친공화국 파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이 네덜란드가 상륙하자 격렬한 게릴라전이 전개되었고, 절정에 달했던 [[1946년]] [[11월 20일]], 발리 서쪽 마루가에서, 구스티 응우라 라이 중령이 장렬하게 전사하였고, 그가 이끌었던 게릴라 부대도 전멸했다(그러나 그 이름은 오늘날 발리 관문인 [[응우라라이 공항]]([[덴파사덴파사르 국제공항]] 현지 정식 명칭)에 남게 되었다. 또한 이때는 본국에 귀국하지 못하고, 잔류하였던 일본군도 가세하였다. 이들 중에는 학도병으로 징병된 조선인 "[[양칠성]]"도 있었으며, 그는 [[1975년]] 11월 인도네시아의 가릇 영웅묘지에 독립영웅으로 안장되었다.<ref>http://www.hani.co.kr/arti/SERIES/198/328455.html</ref>
 
이 게릴라전을 진압한 네덜란드는 [[1946년]] 12월 발리를 네덜란드가 직접 다스리는 "동인도네시아 국가"에 귀속, 자치령으로 선언하고 구체제를 이용한 네덜란드 의한 간접 통치가 재개되었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공화국파와 친네덜란드파의 항쟁은 이어져 1949년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에 주권 이양을 한 후 공화국파가 우세를 점하게 되었고 1950년 독립을 성취하였다. 결국 발리는 공화국으로 통합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수카르노 시대의 발리 사회는 매우 혼란하였고, 특히 국민당과 공산당의 정치적인 대립이 지역 사회에까지 이르렀다. [[1965년]]의 [[9월 30일]] 사건을 발단으로 공산당 토벌하였고, 일설에 의하면 발리에서만 10만명이 학살되었다고 전한다.<ref>Hanna (1976 : 116)</ref>
113번째 줄:
 
=== 기후 ===
[[파일:Climate Diagram Denpasar.PNG|thumb|220px|[[덴파사덴파사르]]의 기우도<ref>각 수치는 1961년 - 1990년까지 30년간 평균。[[세계기상기관]] (WMO)의 데이터</ref>]]
발리섬 주변은 사바나 기후에 속하며, 계절은 북서 계절풍이 부는 우기(10월 - 3월)와 남동 계절풍이 부는 건기(4월 - 9월)로 명확하게 나뉜다. 이 계절풍에 의한 거센 파도는 해상 교통에 지장을 주기도 하지만, 상대적으로 외침으로부터의 보호막이 되기도 하여 독립성을 유지한 역사적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건기의 사이는 동부, 북부를 중심으로 물부족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며, 우기에는 하루에 2 ~ 3시간 [[스콜]]이 내린다. 심할 때에는 30cm의 집중호우가 내릴 때도 있으며, 도로가 침수되기도 한다.
 
124번째 줄:
 
== 행정 ==
* 발리섬은 발리 주를 이루고 있으며 주도는 Denpasar [[덴파사를덴파사르]]이다. 8개의 군(''kabupaten'')과 1개의 시(''kota'')로 구성된다.
* 시(''kota'')
** * [[Denpasar 덴파사르]]
* 군(''kabupaten'')
** 바둥(Badung) - 군도 망구푸라
209번째 줄:
[[네덜란드]]의 식민지 지배 시대였던, [[1920년대]]에 섬에 왔던 발터 슈피스와 네덜란드의 화가 루돌프 보네 등과, 구스티 뇨만 렌 패드로 대표되는 발리 작가와의 교류를 계기로 ‘예술가 협회’ (피타 마하 협회)가 탄생해, [[원근법]] 등 새로운 기법을 추가 발전시켜, 발리 회화는 국제적인 수준으로 탈바꿈하였다. 1930년대 절정기에는 100명 이상의 예술가가 피타 마하 협회에 소속되어 있었다. 얼마 전에 태어난 화법으로, 묵화와 같은 세밀화를 특징으로 하는 〈바투안 스타일〉과 보네의 지도로 탄생한 일상의 풍경을 소재로 하는 〈우붓 스타일〉 등이 있다.
 
또한 상거래에 의한 발리 회화 작품의 외부 유출을 막자는 움직임도 현지에서 시작되고 있다. 그 원조가 된 것이 우붓의 회화 판매상 와양 스테조 네카이며, 우붓에는 그의 설립한 《네카 박물관》이 운영되고 있다. 그 밖에 한때 루돌프 보네 등이 [[1956년]]에 세웠던 〈우붓 회화 미술관〉 (프리 르키산), 《덴파사덴파사르 발리 박물관》, 《발리 문화 센터》, 그리고 [[1932년]]부터 사누르 해안에 살았던 벨기에 화가 르 메이요르의 작품을 직접 전시한 《르 메이요르 회화 미술관》 등이 있다. 그러나 일부 미술품 상점에서 유명한 화가의 작품으로 젊은 화가에 위작을 만들게 관광객에게 파는 경우도 있다.
 
<gallery>
227번째 줄:
발리는 이 섬의 남쪽 해안을 무대로 한 서핑의 메카이며, 건기, 우기를 불문하고 고품질의 파도를 찾아 세계 각국에서 서퍼들이 방문하고 있다. 서프 포인트도 많고, 파도의 성질도 다양하다. 최근에는 서핑으로도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도 많고, 서핑샵과 서핑 가이드 또는 서핑 관련 스폰서로 수익을 얻고 있는 프로 서퍼도 생겨났다.
 
=== 주도 덴파사덴파사르 ===
[[파일:Dempasar 200507-4.jpg|thumb|240px|주도 덴파사덴파사르]]
주도인 [[덴파사덴파사르]]는 현지 사회의 상업 중심지며, 현지 주민이 다니는 쇼핑몰(발리 쇼핑 센터, 마타하리 등), 시장(수공예품, 직물 시장, 파사르 쿤바사리와 중앙 식품 시장의 파사르 바둔 등 ), 레스토랑, 공원이 많이 있다. 기타, 발리 주 국립 박물관과 뿌뿌탄 광장 등의 관광지가 있다.
 
=== 우붓 산악 지대 ===
244번째 줄:
 
== 교통 ==
[[파일:Denpasar national terminal&old tower.jpg|thumb|220px|[[덴파사덴파사르 국제공항]]]]
=== 외부 ===
발리의 관문인 [[응우라라이 공항|덴파사르 국제공항]]이 섬 남부 (꾸따 바로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자카르타]], [[인천]], [[싱가포르]], [[시드니]], [[런던]] 등 각지와 연결되어 있다. 개항 당시에는 발리까지 직항이 없었지만, 곧 해금되어 많은 관광객이 직항 노선과 자카르타 경유 항공편을 이용하게 되었다. 또한 인도네시아의 섬들을 연결하는 국내선 항공편의 편수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