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쓰라-태프트 밀약: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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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명1 = [[가쓰라 다로]]
}}
'''가쓰라-태프트 밀약'''(桂・タフト密約) 또는 '''가쓰라-태프트 협정'''({{llang|ja|桂・タフト協定}}, {{llang|en|Taft–Katsura agreement}})은 [[러일 전쟁]] 직후 [[미국]]의 필리핀에 대한 지배권과 [[일본 제국]](이하 일제)의 [[대한제국]](이하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상호 승인하는 문제를 놓고 [[1905년]] [[7월 29일]] 당시 [[미국]] 육군 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일제 [[내각총리대신일본 제국]] 내각총리대신 [[가쓰라 다로]]가 [[도쿄]]에서 회담한 내용을 담고 있는 대화 기록이다. 이 기록의 내용은 미·일 양국이 모두 극비에 부쳤기 때문에 1924년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이 기록에는 서명된 조약이나 협정 같은 것은 없었고, 일본-미국 관계를 다룬 대화에 대한 각서(memorandum)만이 있었다.
 
각서에 따르면 일제는일본 제국은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식민지]] 통치를 인정하며, 미국은 일제가일본 한국을제국이 [[대한제국]]을 침략하고 [[한반도]]를 '보호령'으로 삼아 통치하는 것을 용인하고 있다. 일부 미국 역사가들은 두 사람이 나눴던 대화에서 새로운 정책이 만들어지거나 조약이 체결된 것은 아니므로 이는 미국이 일제의 한국대한제국 침략에 협력한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태프트가 자신의 의견이 미국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고, 자신만의 의견이라고 말했다는 것을 근거로 들고 있다.<ref>See Raymond A. Esthus, "The Taft-Katsura Agreement - Reality or Myth?" ''Journal of Modern History'' 1959 31(1): 46-51 [http://www.jstor.org/stable/1871772 in JSTOR]; and Jongsuk Chay, "The Taft-Katsura Memorandum Reconsidered," ''Pacific Historical Review'', Vol. 37, No. 3 (Aug., 1968), pp. 321-326 [http://www.jstor.org/stable/3636866 in JSTOR]</ref>
 
그러나, 미국은 러시아와 일제 사이에 [[포츠머스 강화 조약]]이 열리기 전에 이미 한국의[[대한제국]]의 자치능력을 부정하고 일제가 [[한반도]] 지역을 식민지배하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 들어맞는다는 입장을 보였으며,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이를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이 밀약은 한국에대한제국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배와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식민지배를 상호 양해한 일종의 신사협정이었고, 이 합의로 한국에대한제국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차단한 일제는 같은 해 [[11월 17일]] 한국에대한제국에 [[을사조약|을사늑약]]을 강요했으며, 미국은 이를 사실상 묵인했다.
 
== 배경 ==
{{시어도어 루스벨트}}
[[만주]]를 둘러싸고 일제와 러시아 사이의 갈등이 계속되던 [[1904년]] 2월, 일제는 한국과[[대한제국]]과 [[한일의정서]]를 맺는 동시에 아서항을 공격해 [[러일 전쟁]]이 발발하였다. 내부의 혁명 세력의 반발로 인해 전쟁에 힘쓸 여력이 없었던 [[제정 러시아]]의 군대는 패전을 거듭하였다. 일제는 [[1905년]] 5월 [[대한시설강령]]을 통해 한반도 내 주요시설을 강점했으며, [[대한해협]]의 동쪽 수로인 [[쓰시마 해협]]을 지나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던 러시아 제국의 발트 함대를 침몰시켜 승기를 잡았다.
 
[[러일 전쟁]]이 끝을 바라보던 즈음,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1905년 7월 미국 육군 장관 태프트를 도쿄에 파견하여 일제국[[일본 제국]] 수상 가쓰라 다로와 비밀회담을 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각서)은 일본 총리 가쓰라와 미국 육군장관 태프트가 [[1905년]] [[7월 27일]] 회동에서 나눴던 대화 중 기밀로 분류된 대화 내용을 담고 있다. 각서는 [[1905년]] [[7월 29일]]에 만들어졌다.
 
== 내용 ==
이 회동에서 다뤄진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 '''[[동아시아]] 전반에 관한 논의:''' 가쓰라는 [[동아시아]]의 평화가 일제일본 외교의 근본적인 원칙이며, 이러한 동아시아의 평화는 일제[[일본]], [[미국]], [[영국]] 간의 협조가 있을 때에 가장 잘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 '''[[필리핀]]에 관한 논의:''' 태프트는 [[미국]]과 같이 강력하고 일제에일본에 우호적인 나라가 [[필리핀]]을 점령하는 것이 일제에일본에 최선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가쓰라는 일제는일본은 필리핀에 대한 어떠한 공격계획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 '''한국에[[대한제국]]에 관한 논의:''' 가쓰라는 [[러일전쟁]]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것은 한국이었다며대한제국이었다며, 일제가일본이 한국에대한제국에 특별한 조처를 하지 않는다면 한국은대한제국은 또다시 다른 세력과 조약이나 협정을 맺어 러일전쟁을 일으켰던 것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는 경솔한 모습을 보일 것이므로, 한국대한제국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해결책을 도출하는 것이야말로 [[러일 전쟁]]의 논리적인 귀결이라고 주장했다. 가쓰라는 한국이대한제국이 일제와일본과 다른 나라 사이에 전쟁하도록 만드는 상황을 반복하지 않게 하도록 일제는일본은 한국에대한제국에 대해 적절한 조처를 할 것이며, 이는 일제에일본에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태프트는 일제가일본이 한국에[[대한제국]]에 대한 보호권을 갖는 것이 동아시아의 안정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동의했다.
 
태프트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역시 이에 동의할 것이라고 우회적으로 말했다.
 
=== 각서의 요지 ===
 
# 필리핀은 미국과 같은 친일적인친일(親日)적인 나라가 통치하는 것이 일제에일본에 유리하며, 일제는일본은 필리핀에 대해 어떠한 침략적 의도도 갖고 있지 않다.
# 극동의 전반적 평화의 유지에 있어서는 일제일본 · 미국 · 영국 삼국 정부의 상호 양해<ref>일제는일본은 [[한반도]]와 [[만주]], [[타이완]]에 대해, 영국은 만주를 제외한 [[중국 대륙]]에 대해, 미국은 [[필리핀]]에 대해 특별한 이해관계가 있음을 서로 양해하고, 각자 상대방의 이러한 이익과 지배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ref>를 달성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며, 사실상 유일한 수단이다.
# 미국은 일제가일본이 한국에 대한 보호권을 확립하는 것이 러일전쟁의 논리적 귀결이고, 극동지역의극동(極東)지역의 평화에 직접 공헌할 것으로 인정한다.
<ref>이광린, 『한국사강좌 5 - 근대편』.일조각 2002.</ref>
 
== 결과 ==
이 비밀협정은 20세기 초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의 기본 방향에서 나온 것이다. 미국은 러시아와 일제일본 사이에 [[포츠머스 조약|포츠머스 강화회담]]이 열리기 전에 이미 한국의대한제국의 자치능력을 부정하고 일제가일본이 한반도 지역을 식민지배하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 들어맞는다는 입장을 보였는데,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이를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이 밀약(1905.7.29)으로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배제한 일제는일본은 같은 해 8월 제2차 [[영일동맹]](1905년 8월 12일)과 9월 [[포츠머스 조약]](1905년 9월 5일)을 체결함으로써 한반도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세계[[열강]]들로부터 인정받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일제는일본은 [[1905년]] [[11월 17일]]에 [[을사조약|을사늑약]]을 통해 한국의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했으며, 미국은 이를 사실상 묵인했다.
 
== 영향으로 확보한 식민지 ==
 
* {{국기나라|필리핀}} - 미국의 식민지
 
* {{국기나라|대한제국}} - 일제의일본의 식민지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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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일 동맹|제2차 영·일동맹]]
* [[해리 스미스 파크스]]
* [[을사조약]]
* [[대한제국]]
* [[헤이그 특사 사건]]
* [[프레더릭 매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