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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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의 역사 ==
[[파일:Prehistoric life-amsa exhibition.jpg|thumb|left|암사동 선사유적지]]
[[구석기 시대부터시대]]부터 한강 유역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 포전리 [[점말 동굴]]과 단양군 애곡리 [[수양개 선사유적지]]가 한강의 대표적인 구석기 유적이다. 신석기 시대에는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을축년 대홍수]] 때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동 선사유적지]]에서 신석기 유적이 발견되었다.
 
[[청동기 시대를시대]]를 지나 철기시대에는 백제국을 비롯한 [[마한]]의 몇몇 소국이 한강에 자리를 잡았고, 그 중 [[하남 위례성]]에 도읍한 백제가 한강 일대를 통일하고 전성기를 맞았고, 이후에는 고구려가 한강을 점령하고 전성기를 맞는다. 진흥왕 때에 신라는 한강을 점령하고 전성기를 맞은 후에 백제와 고구려의 일부를 통일한다. 이처럼 한강 유역을 소유하면 나라가 번영했다는 것에서 한강이 한반도에서 지리·인구·외교 등에서 훌륭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한반도를 띠처럼 둘렀다는 뜻으로 '''대수'''라 불렀다.<ref>[[반고 (후한)|반고]], 《[[한서]]》 제28권 ― 지리지.</ref> 그리고 [[고구려]]는 한강을 '''아리수'''<ref>[[광개토왕릉비]] 396년 기사</ref>, [[백제]]는 '''욱리하'''라 했고,<ref>《[[삼국사기]]》 25권 <백제본기> 제3 개로왕</ref> [[동진]]과 교역하기 시작한 후에는 '''한수'''라 불렀다. [[신라]]는 한강의 상류를 '''이하''', 하류를 '''왕봉하'''라 하였다.<ref>《[[삼국사기]]》 3권 <신라본기> 제3 자비마립간 11년 기사</ref> 현재의 서울 일대는 고구려가 한산군이라 하였으나, 신라의 점령 이후에는 [[한주]]·신주·한산주·남천주 등으로 부르며 군주·도독을 두고 다스렸다.<ref>《삼국사기》 35권 <잡지> 제4, 지리 2</ref> 삼국사기에 의하면 이때 한강을 '''한산하'''·'''북독'''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