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해군 군축 회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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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해군 군축 회의회담'''(London Naval Conference)은 [[1930년]] [[4월 22일]]에 체결된 군축 조약이며, 참여한 나라는 [[영국]], [[일본 제국|일본]],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 [[이탈리아 왕국|이탈리아]], [[미국]]이었다. 회담은 열강 해군의 보조함 보유량 제한을 주된 목적으로 [[영국 총리]] [[램지 맥도널드]]의 제창으로, 영국 [[런던]]에서 [[1월 21일]]부터 [[4월 22일]]까지 개최되었다.
 
[[1908년]]부터 [[1935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개최되었던 [[런던 해군 군축 회의회담]] 중 두 번째 회의에서회담에서 《'''[[런던 해군 군축 조약]]'''》(''London Naval Treaty'')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의 조항들은 [[1922년]] 2월 6일에 체결된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으로 결정된 사항을 재확인하는 차원이었으며, 조약의 공식 명칭은 《[[해군]] 무장의 감축 및 제한에 관한 조약》(''Treaty for the Limitation and Reduction of Naval Armament'')으로 정해졌다.
 
== 배경 ==
[[1922년]]에 체결된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이하 전 조약)에서는 [[순양함]] 이하 보조함정은 건조 수에 제한을 받지 않았다. 그 결과, 각국은 모두 조약에서 가능한 고성능함 이른바 ‘조약형 순양함’을 건조하게 된다.
 
[[1927년]] [[제네바 해군 군축 회의회담]]에서는 보조함 제한에 대해 논의가 이루어졌지만, 미국의 비율주의와 영국의 개함 규제주의가 대립했기 때문에 끝내 결렬되고 말았다.
 
그 후 [[1929년]] [[6월 14일]], 영미 간의 예비 협상에서 진전이 있었기 때문에, 각국을 초청하여 런던 해군 군축 회의를회담을 개최하게 되었다. 당시 [[하마구치 내각]]은 방만한 재정의 정리를 내걸고 또한 [[러일전쟁]] 때 발행한 [[국채]]의 상환 시기를 앞두고 있었다. 따라서 다른 열강과 협조를 하면서 [[군축]]을 통해 군비를 절감하는 것에 대해 적극적이었다.
 
== 조약 ==
'''런던 해군 군축 조약'''(London Naval Treaty)은 [[잠수함]] 무장에 대한 제한과 [[함선]] 건조 제한을 내용으로 담고 있는 조약이다. 영국은 [[램지 맥도널드]] 총리, 미국도 헨리 스팀슨 국무장관을 파견해 협상에 임했다. 일본 측은 [[와카쓰키 레이지로]] 전 총리를 수석 전권 대사로 임명하고, [[사이토 히로시]] 외무성 정보국장을 정부 대표로 파견하였다. 이전의 [[제네바 회의해군 군축 회담]]에서는 군인을 위주로 협상을 했기 때문에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의한 타협이 성립되지 못했음을 반성한 인사 조치였다. 그래도 협상은 각국의 의견이 대립하며 난항을 겪었지만, 이전 협약을 기본으로 하면서 최종적으로 다음과 같이 결정했다.
 
=== 전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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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의 ==
이 조약이 체결되기 전인 [[1927년]]에 개최된 [[제네바 해군 군축 회의회담]]에서는 미국과 영국 간의 의견 마찰로 인해 협상이 난항을 겪었는데, 런던 해군 군축 조약은 그러한 난관을 뚫고 이룬 결실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에서 결정된 표준 배수량<ref>표준 배수량(The standard displacement)은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에서 정한 선박 톤수 및 적재물에 대한 기준이다. 그 기준에 따르면 선박 운항에 쓰일 연료와 비축 용수를 제외한 총 적재물의 양으로 되어 있다.</ref>과 [[잠수함]] 탑재 함포의 구경이 처음으로 제한된 것도 이 조약에서였다.
 
일본 내각은 당초 영미 대비 70%를 희망했지만 미국의 요구에 따라 0.025%를 깍아서 영미 대비 69.75%로 하는 타협안을 미국에서 제출했다. 일본은 이 방안을 수락할 예정이었으며, 해군성 내부에서도 찬성할 방침이었다. 군 사령부는 중순양함 보유량이 미국 대비 60%대로 낮춘 것과 잠수함 보유량이 원하는 수치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두 가지 이유로 조약 거부를 주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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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희망 수량을 달성하지 못했으면서, 프랑스 등과 같이 일본도 조약의 부분 참여에 그치고 않고, 조약에 서명했다는 것에 대해 일부 언론과 야당에서 비판이 고조되었다.
 
[[1935년]] 12월에 제2차 회의가회담이 개최되었고, 일본은 이듬해 [[1936년]] [[1월 15일]]에 탈퇴하며 군축 시대는 끝났다.
 
== 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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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 링크 ==
* {{언어링크|en}} [http://www.microworks.net/pacific/road_to_war/london_treaty.htm 런던 해군 군축 회의회담 조약 전문]
 
[[분류:미국의 조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