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해군 군축 회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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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해군 군축
[[1908년]]부터 [[1935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개최되었던 [[런던 해군 군축
== 배경 ==
[[1922년]]에 체결된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이하 전 조약)에서는 [[순양함]] 이하 보조함정은 건조 수에 제한을 받지 않았다. 그 결과, 각국은 모두 조약에서 가능한 고성능함 이른바 ‘조약형 순양함’을 건조하게 된다.
[[1927년]] [[제네바 해군 군축
그 후 [[1929년]] [[6월 14일]], 영미 간의 예비 협상에서 진전이 있었기 때문에, 각국을 초청하여 런던 해군 군축
== 조약 ==
'''런던 해군 군축 조약'''(London Naval Treaty)은 [[잠수함]] 무장에 대한 제한과 [[함선]] 건조 제한을 내용으로 담고 있는 조약이다. 영국은 [[램지 맥도널드]] 총리, 미국도 헨리 스팀슨 국무장관을 파견해 협상에 임했다. 일본 측은 [[와카쓰키 레이지로]] 전 총리를 수석 전권 대사로 임명하고, [[사이토 히로시]] 외무성 정보국장을 정부 대표로 파견하였다. 이전의 [[제네바
=== 전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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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의 ==
이 조약이 체결되기 전인 [[1927년]]에 개최된 [[제네바 해군 군축
일본 내각은 당초 영미 대비 70%를 희망했지만 미국의 요구에 따라 0.025%를 깍아서 영미 대비 69.75%로 하는 타협안을 미국에서 제출했다. 일본은 이 방안을 수락할 예정이었으며, 해군성 내부에서도 찬성할 방침이었다. 군 사령부는 중순양함 보유량이 미국 대비 60%대로 낮춘 것과 잠수함 보유량이 원하는 수치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두 가지 이유로 조약 거부를 주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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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희망 수량을 달성하지 못했으면서, 프랑스 등과 같이 일본도 조약의 부분 참여에 그치고 않고, 조약에 서명했다는 것에 대해 일부 언론과 야당에서 비판이 고조되었다.
[[1935년]] 12월에 제2차
== 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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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 링크 ==
* {{언어링크|en}} [http://www.microworks.net/pacific/road_to_war/london_treaty.htm 런던 해군 군축
[[분류:미국의 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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