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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필요|날짜=2011-6-11}}
 
'''틱꽝득'''({{vie|hn=釋廣德|eum=석광덕|v=Thích Quảng Ðức}}, [[1897년]] ~ [[1963년]] [[6월 11일]])은 [[베트남]]의 [[승려]]이다. [[남베트남]] 정부의 불교 탄압에 항의해 소신공양으로 생을 마감하여, 남베트남 사회의 공분과 [[응오딘지엠]] 정권의 종식을 불러와 [[베트남 전쟁 ]]의 도화선이 되었다.
 
== 소신공양 ==
[[파일:틱꽝득의 소신공양.jpg|300px|thumb|right|1963년 6월 [[사이공]]에서 틱꽝득의 소신공양]]
[[남베트남]]을 통치한 [[응오딘지엠 ]]과 지주들은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에, 가톨릭을 옹호하고 [[불교 ]]를 탄압하였다. [[남베트남]] 정부의 [[불교]] 탄압정책에 항의하는 뜻으로 [[1963년]] 사이공의[[사이공]]의 보디아[[캄보디아]] 사관[[대사관]] 앞에서 [[소신공양]] 하였다. 틱꽝득의 소신공양 광경은 베트남 국내와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각국의 언론에 보도되었는데, 화염 속에서도 전혀 표정의 일그러짐 없이 정좌자세로 조용히 죽음에 이르는 의젓한 모습은 많은 충격을 주었다.
 
한편 응오딘지엠 대통령의 남동생인동생인 응오딘누의[[응오딘누]]의 부인이자 [[가톨릭]] 신자인 [[쩐레쑤언마담 누]](응오딘지엠은 독신이었기 때문에 마담 누가 남 베트남의 실질적 영부인 구실을 했음)는 [[미국]]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틱꽝득의 죽음을 "땡중의 바베큐 쇼"라고 깔아뭉개는 망언을 하여 베트남 국민과 [[존 F.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의 분노를 샀다. 이런 몰상식한 발언으로 쩐레쑤언는마담 누는 "드래곤 레이디"라는 악명을 얻었다.
 
== 사건 이후 ==
사건 뒤 틱꽝득 승려의 유해는 수습되어 [[화장 ]]되었다. 화장 중에도 틱꽝득의 [[심장 ]]은 손상되지 않은 채 멀쩡하게 남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고 한다.
 
틱꽝득의 소신공양 장면 순간을 촬영한 미국의 사진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맬컴 브라운]](Malcolm Browne)은 이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하였다.<ref>{{인용|last=Karnow|first=Stanley|title=Vietnam: A history|year=1997|p=297|location=New York|publisher=Penguin Books|isbn=0-670-84218-4|author-link=Stanley Karnow}}</ref>
 
대중에게 강렬한 기억을 남긴 틱꽝득의 [[소신공양]] 장면은 저항의 상징으로서 훗날 미국의 극좌파 성향의 록밴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1992년 데뷔 앨범 《[[Rage Against the Machine]]》의 앨범 커버가 되기도 하였다.<ref>[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20913000622&md=20120916003330_BL 저항과 포용…'베트남'을 품었다] 헤럴드경제, 2012.9.13.</ref>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