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츠담: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TedBot (토론 | 기여)
잔글 봇: 특정 http → https 변환
편집 요약 없음
34번째 줄:
문헌에는 [[993년]]에 처음 등장하였으나, 17세기 이전까지는 인구가 적어 발전이 미미한 마을이었다. [[1660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1620년)|프리드리히 빌헬름]]의 수렵장으로 지정되었고, 이후 호엔촐레른 왕가의 거점으로 발전하였다. [[1685년]] 포츠담 칙령으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위그노]]들이 이주하였으며, 18세기 [[프리드리히 대왕]] 때 이곳에 상수시 궁전과 같은 수많은 별궁을 세우는 등 도시가 크게 발전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세계 대전]] 당시 연합군에게 공습받은 이웃도시이웃 도시 [[베를린]]과 달리 그리 심하게 파괴되지 않아 어느 정도는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제2차 2차세계 세계대전대전 종전 후 체칠리엔호프 궁전에서 [[포츠담 회담]]이 개최되었으며, 이후 [[동독]] 정권이 수립되면서 동독 치하의 도시가 되었으나 통일 이후 다시 브란덴부르크주의 주도가 되면서, 도시의 초기 외관을 복원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 [[1991년]] [[포츠담 대학교]]가 설립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세 개의 공립대학을 비롯해 30개 이상의 연구기관이 있으며 공업도시이기도 하다.
 
== 자매 결연 도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