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판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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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선대 유표의 비호하에 있으면서 객장(客将)으로서 신야를 수비하던 유비는 유종의 항복으로 인해 최전선에서 고립되게 되었다. 이것을 호기로 본 조조군의 공격 앞에 앞뒤가 포위된 신야는 풍전등화가 같았다.
 
조조는 자신을 반대하던 신하 [[공융]]을 처형하고 50만 대군을 일으켜 제1대는 [[조인]]과 [[조홍 (조위)|조홍]], 제2대는 [[장료]]와 장합, 제3대는 [[하후돈]]과 [[하후연]], 제4대는 [[우금]]과 [[이전 (후한)|이전]], 자신은 제5대를 이끌었고 각기 10만의 군사를 지휘했으며 맹장 [[허저 (조위)|허저]]를 절충장군으로 봉하고 군사 3000명을 주어 선봉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제1대 대장 [[조인]](曹仁)과 [[조홍 (조위)|조홍]](曹洪)을 유비가 도망쳐 수비병도 산산히 흩어져 문자 그대로 텅빈 성이 된 신야에 의기양양하게 입성했다. 그러나 이것은 유비휘하의 참모 제갈량의 계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