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비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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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년]] [[조조]]가 [[한중]]을 점령하여 [[익주]]의 [[유비]]가 위험해지자 [[제갈량]]은 계책을 내어 [[형주]] 동쪽 3군을 손권에게 내주고 [[손권]]과 [[조조]]를 싸우게 하는 계책을 편다.
 
[[손권]]은 조조가 여강 태수 [[주광 (후한)|주광]]을 시켜 합비로 가는 보급로인 [[환성]]에 주둔하자, 대군 10만을 이끌고 [[여몽]]과 [[감녕]]을 선봉으로 세우고 [[장흠]]과 [[반장]]을 후군으로 하며, 자신은 [[주태 (동오)|주태]], [[진무 (후한)|진무]], [[동습]], [[서성 (동오)|서성]] 등을 거느리고 중군을 이끌게 되었다.
 
손권의 대군 10만은 오늘날 양쯔 강을 건너 화주를 점령한 후, 선봉장 여몽과 감녕을 시켜 [[환성]]을 함락시키고 여강 태수 주광을 죽인다. 손권은 손쉽게 환성에 입성하고 뒤따라 능통도 군사를 거느리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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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식은 합비를 수비하던 [[장료]]에게로 전해져 장료는 [[악진]], [[이전 (후한)|이전]]과 함께 환성을 되찾을 작전을 세운다. 세워둔 작전대로 [[악진]]이 군사들을 이끌고 오군의 선봉인 여몽과 감녕을 막는 동안 장료와 이전이 손권의 중군을 기습공격해 승리한데 이어 손권의 대군과 기세에 놀란 장료는 더 많은 군사를 필요로 하여 부하 [[설제]]를 보내 조조에게 도움을 청하고 조조는 [[유엽 (조위)|유엽]]의 생각대로 [[한중]]을 [[하후연]]과 [[장합]]에게 맡기고 직접 본대 40만 명을 이끌고 합비로 가자 감녕은 기병 100기를 이끌고 조조의 영채를 기습공격한 익일 [[능통]]은 [[악진]]과 맞서 싸우면서 [[조휴]]의 활에 맞아 죽을 뻔하다가 감녕이 도와서 겨우 살아나자 조조는 전투가 오래끌자 모든 군대를 이끌고 대공세해 조조는 중로군을 거느리고 좌익 1로는 [[장료]], 2로는 [[이전 (후한)|이전]], 우익 1로는 [[서황]], 2로는 [[방덕]]이 맡아 각기 1만 명의 군사를 주고 5로로 나누어 [[유수]]를 공격한다. 에디터의 주 - 이것은 전쟁에 들어가는 엄청난 재원 때문이다. 전쟁은 돈이 많이 든다 왜냐하면 병사 고용비, 무기 및 방어구 제작 밑 유지, 말과 말먹이, 군량, 기치와 군복 그리고 전쟁에 필요한 물품들을 최전선으로 이송하는데 드는 비용 때문이다. 더군다나 군사를 움직이려면 전장의 후방에 있는 보급기지에 보급물품을 지키고 나르며 보급물자를 최전방까지 호송할 군사 또한 따로 필요하다. 엄청난 금액이다. 이런 재정적 부담은 늘 백성들이 져야하는 부담이다. 따라서 조조는 되도록 전쟁을 빨리 끝내려한 것 같다.
 
[[유수]]를 공격당하자 손권의 부하 서성과 동습이 작은 배에 군사들을 태우고 싸우지만 동습은 도중 배가 뒤집혀져 죽고 진무도 서성을 도우러 오다가 방덕을 만나 싸우다 전사하고 만다. 서황이 이끄는 군대의 협공을 받고 위험해진 손권은 얼마 안되는 군사를 수습해 겨우 탈출하지만 이 과정에서 [[주태 (동오)|주태]]가 부상을 당했고 주태의 가상한 노력으로 서성을 구조한다.
 
조조의 군대는 손권의 군대를 겹겹히 포위해 대공격을 펼치치만 도중 손책의 사위 [[육손]]이 이끄는 군대가 합류하면서 크게 패하고 만다. 이후 손권은 유수에서 1달 이상 조조군과 대치했으나 이기지 못했고 결국 [[손권]]은 [[장소]]와 [[고옹]]의 의견을 받아들여 [[보즐]]을 보내 조조에게 화평을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