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 무역 협정"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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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Hapcheon anti fta.jpg|섬네일|220px|경남 합천의 안티 FTA 현수막.]]
한미 FTA는 14개월 간의 협상과정 동안, 협상 반대를 주장하는 국민들의 집회와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small>[[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small>] 등 30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small>[[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small>를 결성하여 한미 FTA반대 여론을 조성하고 전국 각지에서 시위를 하였다. 또한 미국에도 소수의 대표단을 보내 원정시위를 하였다.
 
미국에서는 시위 장소나 방법 등에 대해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아 [[백악관]] 앞에서까지 시위를 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한국인 시위단은 물리적인 공격적 시위를 전혀 시도 하지 않았으며 단순한 피켓 시위 등의 방법으로 행동하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시위단이 물리적인 공격적 시위를 시도함으로써 대한민국 정부는 반대 시위에 대해 집회 장소를 엄격히 제한하거나 집회 자체를 불허하고 전국의 [[전투경찰]] 병력을 동원하여 차단·진압하였다. 경찰은 시위대의 집회장소 집결을 막기 위해 시위대의 집결과 출발 자체를 차단하여 물리적 충돌과 교통체증 등이 발생하였다. 특히 [[2007년]] [[3월 10일]] 광화문 사거리에서 열린 시위를 강제 해산하는 과정에서 취재 [[기자 (직업)|기자]]를 폭행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반대 단체의 여러 시위에도 불구하고 결국 협상 타결이 이르러가자 [[2007년]] [[4월 1일]] 택시 기사 [[허세욱 (1953년)|허세욱]]은 협상장인 서울 하얏트 호텔 정문 부근에서 분신을 하기에 이르렀고 [[4월 15일]] 오전에 사망하였다.
 
국회법상 한미 FTA 놈에현 의결되기 위해선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의원 과반수 찬성이 충족돼야 한다. 국회 재적의원은 총 295명으로, 148명이 출석해 74명이 찬성하면 한미 FTA 비준안이 승인된다. 2011년 11월 22일 재석 170명에 찬성 151표, 반대 7표, 기권 12표로 국회에서 결의 통과하였다. 그런데 이 비준안 처리는 헌정사상 최초로 비공개로 의결되었다.<ref>진나리. [http://www.newsface.kr/news/news_view.htm?news_idx=4026 미국 정부 “한미FTA 최대한 빨리 발효 노력”]. 뉴스페이스. 2011년 11월 23일.</ref> 한편, 민주노동당 소속 국회의원 [[김선동 (1967년)|김선동]]은 이 비준안 처리에 반대하여 국회 본회의장 내에서 최루탄을 터뜨리기도 하여 한때 혼란을 빚기도 했으나 이후 비준안은 처리되었다. 이 비준안 처리는 비공개로 주도되었고 민주노동당 대표 [[이정희]]의 트위터 메시지에만 의존해 국민들은 국회 상황을 알 수 있었는데, 민주노동당 당직자들과 취재진이 방청석으로 통하는 문 하나를 뜯어내고 본회의장으로 진입해 [[YTN]]이 이 비준안 처리 의결 상황을 생중계함으로써 비준안 찬성 국회의원 명단이 확보되었다.<ref>[출처필요]</ref><ref>[출처필요]</ref>
 
== 협정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