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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안칠자]]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문장이 아름다웠고<ref>《삼국지》 21권 위서 제21 [[왕찬]]</ref> [[아버지]] 정충(丁沖)이 [[조조]]와 매우 친했다. 조조는 장녀 [[청하공주]]를 정의에게 시집보내려 하였으나 삼남 [[조비]]가 “[[여자]]는 [[얼굴]]을 보는데 정의는 [[애꾸눈]]이니 청하공주가 상심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하후돈]]의 [[아들]] [[하후무]]가 더 낫습니다.”라고 하므로 그렇게 하였다. 이윽고 조조가 정의를 서조연(西曹掾)<ref name='정의란 무엇인가'>《삼국지》22권 위서 제22 환계</ref> 으로 삼아 여러 대화를 한 후에야 “정의는 훌륭한 [[선비]]이니 만약 [[장님]]이었다 해도 내 [[사위]]가 되었어야 했다. 내 아들이 그르쳤구나!”라고 후회함과 동시에 정의의 재주와 활달함을 칭찬하였다.
 
정의도 이 일을 한스럽게 여기고는 [[동생]] 정이(丁廙)와 함께 임치후(臨菑侯) [[조식 (조위)|조식]]과 가까이 지내며 그를 조비 대신 [[태자]]로 밀었다. [[위진 (조위)|위진]]도 회유하려고 하였으나 거절당하였고<ref>《삼국지》22권 위서 제22 위진</ref> 동조연 [[모개]]와 [[서혁]](徐奕)은 강직하여 야합하지 않았다.<ref name='정의란 무엇인가' /> 이에 자주 모함하니 끝내 [[최염]]은 죽게 만들고 모개는 관직을 잃었으며 서혁은 [[위군]] [[태수]]로 좌천되었다.<ref>《[[자치통감]]》67권 한기 제59 [[헌제]] [[건안]] 21년. 부현(傅玄), 《부자》(傅子) ; 배송지 주석, 《삼국지》12권 위서 제12 서혁에서 인용</ref>

그러나 결국 태자 자리는 조비가 거머쥐었고 220년 아예, [[위군|위나라연강]] [[왕]]위를원년(220년) 이으면서조조의 뒤를 이어 위왕이 되었다. 정의는 우자간연(右刺姦掾)으로 좌천되었다.좌천되었고, 목숨에 위협을 느낀 정의는 조비의 가장 친한 [[친구]]인 중령군(中領軍) [[하후상]]에게 거듭 [[머리]]를 조아리며 구해달라고 빌었다. 하후상이 [[눈물]]까지 흘리며 정의를정의의 살려줄구명을 것을탄원하였으나, 조비에게결국 청했지만 하옥됐다가정의는 죽었다옥사하였다. 이때 동생 정이와 다른 [[남자]] 일족도 모두 죽었다.<ref>《삼국지》19권 위서 제19 진사왕식</ref>
 
== 일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