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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상 ==
북학파의 선구자로, 당시 굉장히 혁신적인 철학자였다. 그는 지전설과 우주무한론을 주장하며 이를 근거로 화이의 구분을 부정해 주체성을 강조했다.<ref name=":0">{{웹 인용|url=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D%99%8D%EB%8C%80%EC%9A%A9&ridx=0&tot=14|제목=홍대용(洪大容)|성=|이름=|날짜=|웹사이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출판사=|언어=ko|확인날짜=2018-06-17}}</ref> 대표적으로 지구의 자전설을 처음 대중에게 설파했던 바 있다. [[당나라]] 때 자취를 감추었고, 오랜 시간 농민들에게 고파왔던 두 제도, 농토를 균등하게 분할하는 [[균전제]](均田制)와 [[부병제]](府兵制)를 토대로 하는 경제 개혁을 주장했으며, 특히 신분 제도 개혁에 앞서 [[과거 제도|과거제]]를 없애고 공거제(貢擧制)에 의한 인재를 고루 등용하며, 지금의 초등학교 입학 조건 나이인 8세 이상의 모든 아동을 차별 없이 교육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과감한 개혁을 주장하였다.
 
홍대용은 그의 저서 《의산문답》에서 보여 주듯이 [[인류]]의 기원, [[사회 계급|계급]]과 [[국가]]의 형성, [[법률]]·제도 등에 관한 이론 발표에서부터 시작하여 그에 입각해 “놀고먹는 [[귀족]] 계급이 나라와 백성을 좀먹는다(所謂遊民倖位耗國病民 : 《계방일기》).”라며 [[노동]]하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 않는 양반 계급의 허위의식을 지적하는가 하면, 그밖에도 [[천문]]·율력(律歷)·산수 등 과학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이론을 전개했다. 천문 분야에서도 [[지구지전설]]을 주장하였는데, 17세기에 중국이 서양에서 이를 전해받았을 때 지지를 받지 못한 것과 대조된다.
 
그는 과학사상을 바탕으로 중국 중심적인 화이론을 부정하면서, 중국과 조선, 서양까지를 상대화하여 어느 쪽이 '화'이고 '이'일 수 없다고 했다. 또한 인간과 자연 중 어느 쪽이 더 우월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인간과 다른 생명체를 똑같은 것으로 상대화헀다. 그리고 당시 사회 계급과 신분 차별에 반대하며 균등한 교육 기회 부여, 재능과 학식에 따른 일자리 분배를 주장했다.<ref name=":0" />
 
== 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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