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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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 ==
북쪽으로는 [[금강]]을 경계로 [[충청도]]와 접하며, 동쪽으로는 [[소백산맥]]을 사이에 두고 [[경상도]]와 접한다.
 
== 역사 ==
{{참고|광주광역시|전라북도|전라남도|제주특별자치도|설명=1896년 [[13도제]] 지정 이후의 역사는}}
=== 고대 ===
전라도는 고대 [[마한]](馬韓)의 영역이었다. 마한은 고대 한민족의 54개 부족국가 연맹체다. 마한은 [[삼한]]의 기간(基幹)으로서 가장 넓은 지역에 걸쳐 있었다. 그 범위는 한강 유역(경기도)으로부터 충청·전라에 퍼져 있었으며, 목지(目支)[1]·백제(伯濟)[2] 등 54개국이 지역적 연합체를 이루고 있었다. 후에 부여 등 북방계 유이민을 중심으로 형성된 백제(百濟)국이 마한세력을 통일했다.
 
신라계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일연의 《[[삼국유사]]》외에 사료가 부족한 한국 고대사에서 정확한 실상을 파악하기란 어렵다. 천관우의 위치 비정에 따르면 마한의 54개 소국 가운데 19개 국이 전라도 지역에 있었다고 한다. [[노령산맥]] 이북의 마한 소국들은 [[1세기]] 무렵에 [[백제]] [[온조왕]]과 [[다루왕]]에게 통합되고, 노령산맥 이남에 잔존한 마한세력은 백제의 영향 아래 [[침미다례]]라는 연맹을 형성했다. [[고구려]]의 공격으로 백제가 [[웅진]]으로 천도하면서 백제의 영향력이 약화되자 [[가야]]가 순천, 여수 등지를 침략하고, 남원 일대에 [[기문]] 지방이 형성되었다. 후에 국력을 회복한 백제가 침미다례를 탈환하고 가야세력을 축출하여 전라도 지역은 완전히 백제에 통합 되었다. 백제는 지방행정단위인 5방(方)중에 현재의 전라북도 지역에 [[고부군]]을 치소로 중방(中方), 전라남도 지역에 장성을 중심으로 남방(南方)을 설치하였다. 백제 말기에는 무왕이 고향인 전북 익산을 천도지로 선정하고 미륵사를 창건했다.
 
{{참고|완산주|무진주}}
[[660년]]에 백제가 멸망하자 백제 영토에는 [[당나라]]의 [[웅진도독부]]가 설치되고, 전라도 지역에 6개 주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곧이어 일어난 [[백제 부흥운동]]과 [[나당전쟁]]으로 인해 웅진도독부의 행정 구역은 제구실을 못했으며, [[신라]]는 웅진도독부를 무시하고 지금의 나주를 치소로 발라주(發羅州)를 설치하였다. 당나라 세력을 완전히 몰아낸 신라는 [[685년]] 경에 전국을 9주로 정비하면서 발라주의 치소를 지금의 광주로 이전하면서 [[무진주]]로 개칭하고, 전북지역에는 [[완산주]]가 설치되었다. [[완산주]]에는 10개의 군, 31개의 현, 그리고 [[남원경]]이 설치되었며, [[무진주]]에는 14개의 군, 44개의 현이 있었다. [[757년]]에는 완산주를 전주(全州), 무진주를 무주(武州)로 고쳤다.
[[8세기]]에서 [[9세기]]에 걸쳐 신라가 내분 등으로 혼란에 빠지자 각지에서는 호족 세력이 성장하였는데 [[892년]]에 [[견훤]]이 무진주(지금의 광주)에서 성장하여 완산주(지금의 전주)를 석권, [[900년]]에 [[후백제]]를 건국하였다. [[903년]]에는 나주를 중심으로 서남부 해안 지방을 [[왕건]]이 손에 넣어 [[후고구려]]의 영토로 삼기도 했다. [[936년]]에 [[고려]]에 의해 후백제가 멸망하고 전라도 지역은 고려에 통합됐다.
 
=== 고려 ===
고려 초기에 12목이 설치되면서 전라도 지역에는 전주목(全州牧), 나주목(羅州牧), 승주목(昇州牧 : 순천)이 설치되었다. 태조 왕건은 전라남도 나주 출신 혜종에게 제 2대 왕위를 물려줬으며 [[995년]]에 [[고려 성종|성종]]은 전라북도 일대를 강남도(江南道), 전라남도 일대를 해양도(海陽道)로 정하였으며 [[1018년]]에는 [[고려 현종|현종]]이 강남도와 해양도를 합쳐 전주와 나주의 첫글자를 딴 전라주도(全羅州道)를 설치하여 전라도라는 지명이 처음 등장하였다. 전라도는 2목(牧), 2부(府), 18군(郡), 82현(縣)을 관할하였다.
 
=== 조선 ===
[[조선 시대]]에도 전라도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태조 이성계는 본관인 전라북도 전주를 한양, 개성과 더불어 3경으로 승격하였으며 태종 이방원은 전주에 경기전을 지어 선조들을 모셨다. 또한 태종 9년인 [[1409년]]에 전라도 관찰사 윤향(尹向)의 건의로 속현과 [[향·소·부곡]]이 다른 지역보다 먼저 폐지되었다.
[[1645년]]([[조선 인조|인조]] 23년)에 나주에서 향리가 목사를 칼로 찔러 중상을 입히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나주목을 금성현(錦城縣)으로 강등하고 나주대신 남원을 따서 '''전남도'''(全南道)라 하였다. [[1654년]]([[조선 효종|효종]] 5년)에 금성현은 나주목으로, 전남도는 전라도로 복구되었다. 그러나 1년 후 [[1655년]] 나주에서 전패(殿牌)가 파손되는 사건이 일어나 다시 금성현으로 강등되고 '''전남도'''가 되었다. 광남도(光南道) 등으로 개칭했다가 되돌렸다.
[[1728년]]([[조선 영조|영조]] 4년)에는 [[이인좌의 난]](세종대왕의 넷째 아들인 전주 이씨 임영대군 후손의 역모 사건)이 일어나자 나주목이 또다시 현으로 강등되고 광주를 따서 전광도(全光道)로 변경되기도 했으나 [[1737년]]에 곧 다시 전라도로 돌아왔다.
[[1895년]]에 [[23부제]]로 행정구역 제도가 바뀜에 따라 전주부, 남원부, 나주부, 제주부로 분리([[금산군]]은 공주부에 편입되었다)되어 전라도는 폐지되었다. 1년 후인 [[1896년]], [[13도제]]로 다시 바뀌면서 [[전라북도]](금산군이 다시 편입되었다)와 [[전라남도]]로 나뉘었다.
 
== 행정 구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