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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제'''(薛悌, [[173년]] ~ ?)는 [[중국]] [[후한]] 말기 ~ [[삼국 시대 (중국)|삼국 시대]] [[위 (삼국)|조위위나라]]의 관료로, [[자 (이름)|자]]는 '''효위'''(孝威)이며 [[연주 (중국)|연주]] [[동군]] 사람이다[[사람]]이다.
 
==생애==
집안이 비천하였으나, [[연주 (중국)|연주]][[자사 (관직)|목]] [[조조]]가 종사(從事)로 발탁하였다.
 
[[흥평]] 원년([[194년|194]]), 조조가 [[서주 (중국)|서주]]를 정벌 중이던 때에 [[장막 (후한)|장막]] · [[여포]] 등이 후방에서 반란을 일으켜 연주의 속현들이 이에 호응하였다. 설제는 [[정욱 (조위)|정욱]]과 함께 조조가 돌아올 때까지 견성(鄄城) · 범(范) · 동아(東阿) 세 현을 지켜냈으며, [[태산군|태산]][[태수]] [[응소 (후한)|응소]]가 군을 버리고 달아나자 스물두 살의 나이로 그 후임이 되었다.
 
[[진교 (조위)|진교]]는 [[진등]]의 요청으로 허(許)에 갔을 때 태산에 들러 설제와 교류하였다. 당시 진교는 공조(功曹)일 뿐이었으나, 설제는 직위를 따지지 않고 진교와 친하게 지내었다. 또 설제는 [[고당륭]]을 독우(督郵)에 임명하였는데, 독군종사(督軍從事)가 언쟁을 벌이던 중 설제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자<ref>당시 상대방의 이름자를 입에 담는 것은 금기시되었으며, 그 대신 자나 관직명 등으로 불렀었다.</ref> 고당륭은 칼을 쥐며 크게 화를 냈으나 설제가 이를 제지하였다. 이처럼 설제는 도량이 넓어 관리들의 모범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