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초 (촉한)"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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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 마등의 장남 ===
어렸을 때부터 건장하였다. [[아버지]] [[마등]]은 [[정서장군]]으로서 관서 지역에서 독자 세력을 구축한 세력가 중 한 명이었다. [[건안]] 초, 마등이 [[양주 (涼州간쑤 성)|양주]]에서 진서장군(鎭西―) [[한수 (후한)|한수]]와 [[전쟁]]을 벌였다. 한수의 장수 [[염행]]도 마초와 마찬가지로 [[이름]]이 났기에 서로 겨루었다. 염행이 [[모 (무기)|모]]로 마초를 찌르려 했는데 모가 부러졌다. 염행이 당황하지 않고 부러진 모로 마초의 [[목]]을 가격해 마초는 [[죽음]]의 [[문]]턱을 다녀왔다.<ref name='요단강'>[[어환]], 《[[위략]]》 ; 배송지 주석, 《삼국지》15권 위서 제15 [[장기 (후한)|장기]]에서 인용</ref> [[사례교위]] [[종요]]가 [[관중 (지명)|관중]]으로 부임해 한수와 마등을 화해시켰다.
 
[[202년]] [[원담]]·[[원상 (후한)|원상]] [[형제]]가 [[곽원 (후한)|곽원]]과 [[고간 (후한)|고간]]을 보내 [[하동군 (중국)|하동군]]을 찔렀다. 마초는 종요의 독군종사(督軍從事)가 되어 그 토벌을 도왔다. 평양현(平陽縣)에서 맞붙어 유시에 맞은 [[다리 (해부학)|다리]]를 자루로 싸매면서까지 분전한 끝에 격파하였다. 곽원의 [[머리]]는 마초의 부장 [[방덕]]이 취하였다. 이윽고 [[서주 (중국)|서주]][[자사 (관직)|자사]]를 거쳐 간의대부(諫議大夫)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는 않았다. [[208년]]<ref>건안 15년은 오기이다.</ref> 마등은 [[위위]]를 받고 조정으로 들어갔다. 마초가 편장군(偏將軍)에 도정후(都亭侯)를 받고 마등의 세력을 통솔하였다. [[동생]] [[마휴]]와 [[마철]]도 각기 봉거도위(奉車都尉)와 [[기도위]]에 임명되어 [[가족]]들과 [[업 (지명)|업]]으로 이주하고 마초만이 남았다.<ref name='마초맨'>어환, 《전략》(典略) ; 배송지 주석, 《삼국지》36권 촉서 제6 마초에서 인용</ref>
 
=== 재기 ===
조조는 [[안정군|안정]]까지 추격했다가 소백(蘇伯) 등이 일으킨 [[하간군|하간]]에서의 반란으로 인해 환군하였다. [[양부]]가 마초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방비를 철저히 해야한다고 진언했으나 급히 가느라 그러지 못하였다. [[212년]] 혹은 [[213년]]<ref>212년은 《삼국지》 양부전과 《후한서》 효헌제기. 213년은 《삼국지》 무제기와 《자치통감》</ref> 과연 마초는 [[강족]] 등 호인(胡人)들과 함께 농산(隴山) 일대를 습격하였다. 다수의 [[군 (행정 구역)|군]][[현 (행정 구역)|현]]이 이에 호응하였고 한중의 장로도 [[양앙]]을 보내 지원하였다. [[양주 (涼州간쑤 성)|양주]]자사 [[위강 (후한)|위강]]과 [[천수군|한양]][[태수]]는 치소인 기현(冀縣)만을 붙들고 있을 뿐이었다. 만여 명으로 [[공성전|공성]]에 들어갔다.<ref name='복수는 나의것'>《삼국지》25권 위서 제25 양부</ref>
 
몇 겹으로 포위하고 치열하게 싸우던 어느 날, 누군가가 성에서 몰래 나온 흔적이 발견되었다. 사람을 풀어 추적하니 현친현(顯親縣) 경에서 양주별가(―別駕) 염온(閻溫)이 붙잡혀왔다. 위강이 [[장안]]을 진수하고 있던 [[하후연]]에게 위급함을 알리고자 밀파한 것이었다. 그 포승을 풀어주며 회유하는 동시에 ‘원병이 없을 거란 [[사실]]을 성을 향해 외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하였다. 염온은 오히려 3일 만에 원군이 당도할 것이라며 힘내라고 [[소리]]치니 성에서는 [[만세]] 소리가 터져나왔다. [[목숨]]이 아깝지 않냐고 화를 냈지만 염온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시 끈질기게 달랬음에도 죽음만이 있을 뿐 두 마음은 없다며 굽히지 않아 그 생을 마감시켜주었다.<ref>《삼국지》18권 위서 제18 염온</ref> 8월, 전의를 상실한 위강이 [[성문 (건축)|성문]]을 열면서 정월부터 시작한 [[전투]]가 끝났다. 약속과 달리 양앙을 시켜 위강과 태수를 [[살해]]하였다.<ref name='복수는 나의것' /> 뒤늦게 위강을 구하러 달려오던 하후연도 200여 [[리]] [[거리]]에서 요격해 물리쳤다.<ref name='울어라 활아'>《삼국지》9권 위서 제9 하후연</ref> 이로써 농우를 장악하고 정서장군 겸 [[병주]]목, 독양주군사를 자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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