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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세기]]에 [[진나라]]가 합비현을 두었고 구강군의 관할에 속했다.
 
[[삼국시대 (중국)|삼국시대]]에는 [[위 (삼국)|위나라]]가 지배하고 있었는데 [[양주 (揚州안후이 성)|양주]] 공략의 주요 길목이어서 [[오 (삼국)|오나라]]가 끊임없이 이를 확보하려 하였다. [[215년]]에는 위 무장 [[장료]]가 [[악진]], [[이전 (후한)|이전]] 등이 7,000명의 병력으로 오나라의 10만 명을 막아냈다. 특히 장료는 몸소 정예 [[기병]] 800명과 함께 오나라군을 기습하여 [[손권]]의 본진을 무너트렸다. [[만총]]은 [[230년]]대 초기에 노후화된 합비성의 북서쪽에 합비 신성을 축조하고 [[234년]] 또다시 오나라의 손권을 격퇴했다. 지금도 합비에는 합비 신성 유적지가 남아 있다.
 
[[수나라]] 때는 합비현에 여주(廬州, 庐州)가 설치되었고 [[명나라]]와 [[청나라]]까지 계속됐으므로 루저우로도 알려졌다. 현재 도시는 [[송나라]] 때 시작된다. 초기 합비는 현재보다 훨씬 북부에 있었다. [[남송]] 때는 [[금나라]]에 대항하는 최전선이 되었고 양국의 교역으로 번성하기도 했다. [[1853년]]에서 [[1862년]]까지 안후이성의 임시성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