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피 프레데리케 폰 바이에른 왕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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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Sophie Friederike Dorothea Wilhelmine von Bayern''
|왕가 = 혼전:[[비텔스바흐 왕가]]<br />혼후:[[합스부르크로트링겐 왕가]]
|배우자 = [[프란츠 카를 폰 외스터라이히 대공]]
|자녀 = [[프란츠 요제프 1세]]<br />[[막시밀리아노 1세]]<br />[[카를 루트비히 폰 외스터라이히 대공]]<br />마리아 안나 카롤리나<br />[[루트비히 빅토어 폰 외스터라이히 대공]]
|부친 = [[바이에른의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
|모친 = [[바덴의 카롤리네]]
|휘 = 조피 프레데리케 도로테아 빌헬미네<br />Sophie Friederike Dorothea Wilhelmine
|출생일 = {{출생일|1805|1|27}}
|출생지 = [[바이에른 선제후국]] [[뮌헨]]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872|5|28|1805|1|27}}
|사망지 = {{국기|[[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빈]]
|사망원인 = [[뇌종양]]
|종교 = [[로마 가톨릭가톨릭교회]]
}}
 
'''바이에른 공주 조피''' (Princess Sophie of Bavaria)는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어머니로서,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트 1세|페르디난트 1세]]가 [[프란츠 카를 폰 외스터라이히 대공]]에게 양위하면서, 황후가 될 수 있었지만, [[마리아 안나 디 사보이아 왕녀]]와 함께 [[프란츠 카를 폰 외스터라이히 대공]]을 압박하면서, 자신의 아들인 [[프란츠 요제프 1세|프란츠 요제프 대공]]에게 제위를 잇게 한다. 이는 무능한 자신의 남편보다 똑똑한 자신의 아들을 [[오스트리아의 황제|황제]]로 즉위시켜, [[오스트리아 제국]]의 보탬이 되길 위해서였다. 이후 그녀는 자신 덕택에 황제가 된 아들을 이용해 오스트리아의 정치 전반에 관여하게 되었지만, [[자유주의]]적인 [[엘리자베트 폰 외스터라이히운가른 황후|엘리자베트]]로 인해 생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의 성립과 자신의 둘째 아들인 [[막시밀리아노 1세]]의 사망 이후, 정치에서 물러난다. 그녀는 [[나폴레옹 2세|라이히슈타트 공작 프란츠]]와 매우 친하게 지냈으며, 그가 죽고나자 냉정한 사람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 생애 ==
=== 결혼과 자녀 ===
그녀는 군주와 결혼한 자매들과 달리 [[오스트리아 대공]]에 불과한 [[프란츠 카를 폰 외스터라이히 대공]]과 결혼하는데,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1세|프란츠 1세]]의 장남이 저능아였고,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차남이었던 [[프란츠 카를 폰 외스터라이히 대공]]과의 결혼도 [[합스부르크로트링겐 왕가]]와 [[비텔스바흐 왕가]]에서도 중요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조피는 [[프란츠 카를 폰 외스터라이히 대공]]을 처음 보고, 그의 모습에 기겁을 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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