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트 인 바이에른 여공작: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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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혼 ===
그녀는 리하르트 백작을 좋아했지만, 그의 낮은 신분때문에 어머니 루도비카 공작 부인에 의해서 강제로 헤어지게 되었고, 백작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결핵]]으로 사망했다. 그러던 중 이모 [[조피 대공비프레데리케 폰 바이에른 왕녀|조피]] 대공비는 자신의 아들 [[프란츠 요제프 1세]]와 [[프로이센 왕국]]의 [[프로이센의 마리아 아나|아나 공주]]와의 약혼이 취소되자, 시시의 언니였던 [[바이에른의 헬레네|헬레네]]와의 약혼을 추진했다. 그러나 [[프란츠 요제프 1세]]는 따라나온 시시를 보고 첫눈에 반해 결국 자신의 생일날인 [[8월 18일]] 조피 대공비와 루도비카 공작 부인에게 시시와 결혼하겠다고 밝혔다. 대공비와 공작 부인, 시시 모두 승낙하면서 황제는 시시에게 [[8월 19일]]에 청혼하였고, 1년 뒤 시시는 [[오스트리아의 황후|황후]]가 되었다.
 
=== 구속의 시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