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인천 사태"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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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입장 표명에 분개한 재야와 운동권 세력은, [[5월 3일]] 신한민주당 개헌추진위원회 [[인천]] 및 [[경기]]지부 결성대회가 열릴 예정이던 인천시민회관에서 대회 시작 전부터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이에 따른 경찰 투입으로 대회는 당지도부가 대회장으로 입장하지도 못한 채 무산되었다.
 
1만여 명의 시위대는 도로를 장악하고 산발적인 시위를 하다가 오후가 되면서 [[스크럼]]을스크럼을 짜고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경찰]]과 충돌하였다. 시위대는 [[신한민주당]]의 각성을 요구하고 이원집정(二元執政) 개헌 반대를 외치며 국민헌법제정과 헌법제정민중회의를 소집할 것을 주장하였다. {{출처}}
 
이 사태로 319명이 연행되었고 129명이 구속되었으며, 김영삼, 김대중 중심의 제도권 야당과 재야 및 학생 운동권 세력의 공조는 [[1987년]] 4월에서야 회복될 수 있었다.{{출처}}
 
[[분류:19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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