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1세 표도로비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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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란시대(1598~1610)을 거친 뒤에 [[1613년]] [[2월]] 러시아의 젬스키 소보르(전국회의)에서는 새로운 차르를 선출하게 되었는데, 그때 선출된 사람이 미하일 로마노프(1596~1645)로 그가 바로 미하일 1세다. 그는 [[러시아의 이반 4세|이반 뇌제]](雷帝:재위 1533~1598)의 첫째 황후인 아나스타샤의 오빠인 니기타 로마노프의 손자로, 할아버지를 통하여 [[류리크 왕조]]의 마지막 차르 [[표도르 1세]]와 친척 관계다.
밀사들이 [[모스크바]]에서 미하일과 [[보리스 고두노프]] 통치 때에 수녀가 되는 강요를 당한 어머니가 함께 살던 코스트로마(Kostroma) 근처의 [[수도원]]으로 와서 [[3월]]에 미하일은 마지못하여 왕좌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20년 동안
그는 최고 지도자가 되기엔 마음이 심약한 사람이었다고 하며, 실권은 늘 부모와 측근 고문들에게 있었다. 재위 기간 동안엔 [[폴란드]]의 [[지그문트 3세 바사]]의 공격에 시달렸었다. [[1617년]]에 [[스웨덴]]과, 이듬해에는 [[폴란드]]와 각각 스톨보보 조약과 디빌리노 화평을 맺어 불안을 없앴다.
[[1619년]] [[정교회]]의 수도사인
{{전임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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