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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족 정보
|이름= 안평대군<br />安平大君
|본명= 이용 <br /> 李瑢
|작위 = 대군(大君)
|출생일= {{출생일|1418|10|18}}
{{인용문2|내가 불사(佛事)에 지극히 정성을 드리고 지극히 부지런하였으나, 세종(世宗)과 소헌 왕후(昭憲王后)와 문종(文宗)이 서로 잇달아 붕어(崩御)하시고, 아들 이우량(李友諒)도 또 따라서 죽고, 이제 또 아내도 죽으니 비로소 불사(佛事)가 사람들에게 무익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불교]] 사찰을 찾아다니며 공덕을 드리는 것을 중단한다. 평소 부인 정씨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그는 아내의 장례식에 불참했는데 이를 두고 말이 많았다. 왕조실록<ref>승자의 기록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된다.</ref> 에 의하면 "용(瑢)이 박대(薄待)하여 서로 보지 아니한 것이 이미 7, 8년이었다. 졸하게 되자 그 염(斂)하고 빈(殯)하는 여러 가지 일을 전혀 돌아보지 아니하였고, 그 아들 의춘군(宜春君) 이우직(李友直)도 또한 가서 보지 아니하니, 서인(庶人)의 죽음과 다를바가 없다"고 하였다.<ref>단종실록 6권, 단종 1년(1453 계유 / 명 경태(景泰) 4년) 4월 23일(경술) 3번째기사 "안평 대군 이용의 부인 정씨의 졸기"</ref>
 
=== 계유정난과 죽음 ===
 
== 시조 ==
{{인용문|제목 미상의 시조<br /><br />
 
세상 사람들이 입들만 성하여서<br />
제 허물은 전혀 잊고 남의 흉 보는 것이야<br />
남의 흉 보거나 말고 제 하물을 고치괴자.<br /><br />
 
바람에 휘었노라 굽을 솔 웃지 마라<br />
춘풍에 피온 꽃이 매양에 고왔으랴<br />
풍표표 설분분 할제 네야 나를 불으리라.<br /><br />
 
주욕 신사~라 하니 내 죽음직 하건마는<br />
 
== 기타 ==
시문과 그림에 관심이 많아 [[안견]], [[박팽년]], [[김수온]], [[이현로]] 등과 교류하였다. 안평대군의 주도로 글과 그림이 어울려 이루어지는 서화합벽(書畵合璧)이 권축(卷軸) 형태로 다수 제작되었다. 이는 세종대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종합예술 형식이다.<ref>{{웹 인용|url=http://www.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be54d9b8bc7cdb09&control_no=8d0dba6970fc28c6ffe0bdc3ef48d419|제목=〈몽유도원도〉 권축과 세종대 서화합벽 연구|성=정윤회|이름=|날짜=|웹사이트=|출판사=|확인날짜=}}</ref> 대표적인 작품으로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들 수 있다.
 
안평대군과 이현로(李賢老)의 집에는 글과 작품들이 많았는데, [[계유정난]] 이후 [[조선 세조|세조]]는 이 작품들을 보지도 않고 '괴상한 글과 작품'이라는 이유로 모두 불태워 버렸다.<ref>단종실록 8권, 단종 1년(1453 계유 / 명 경태(景泰) 4년) 10월 25일(무신) 7번째기사 "세조가 이용과 이현로의 집에 있는 글을 모두 불태워 버리다"</ref>
{{장릉배식록}}
{{조선의 왕자}}
 
[[분류:1418년 태어남]]
[[분류:1453년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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