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성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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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날짜=2015-1-10|그는 [[1441년]] [[1월]]에 [[조선]] [[한성부]]에서 [[조선 세종|세종대왕]]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1466년]]에는 등준시무과에 갑과 급제함에 이어 도총관이 되어서 이듬해 [[1467년]] [[남이]]와 함께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는 총사령관에 임명되고 난을 진압한 공로로 27세의 나이로 [[병조판서]]에 제수되었으며, 그 해 남이에게 그 직을 넘기고 [[1468년]] [[음력 7월 17일]]에 28세의 나이로 영의정에 임명되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ga_11407017_001].}}정치적으로는 훈구파에 가까웠지만, 신진세력 및 사림파와도 가깝게 지냈다.
 
1468년 9월 큰아버지 [[조선 세조|세조]]가 선위하고 사촌 동생이자 손윗동서인 [[조선 예종|예종]]이 즉위하자 영의정으로써 잠시 [[섭정]]하다가 1469년 1월 아버지 [[임영대군]]이 훙서(薨逝)하자 부친상을아버지상을 치르기 직전에 영의정 직위에서 물러났다.
 
1470년 최세호가 귀성군이 왕의 재목이라고 한 것을 [[정인지]]가 역모로 엮어서, [[1월 14일]]에 최세호와 권맹희는 죽임을 당하고, 귀성군은 유배를 가게 된다. 그로부터 9년 후 [[1479년]] [[1월 28일]]에 39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