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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태자비였던 [[가남풍]]은 투기가 심해 남편인 [[서진 혜제|혜제 사마충]]의 다른 후궁들을 잔혹하게 죽였다. 무제는 이것을 알고 크게 노하여 가남풍을 냉궁에 유폐하려 했지만 무도황후는 아직 태자비의 나이가 어려 저지른 짓이라고 감쌌으며, 또한 여러번 가남풍에게 경고하고 권면하였다. 가남풍은 그녀가 자기를 도우려고 하는 줄 모르고 이로 인해 원한을 품었으며 무도황후가 무제 앞에서 자기를 비방했다고 여겨 그 원한이 날로 깊어갔다.
 
무제가 죽고 혜제가 황제가 되자 무도황후는 [[황태후]]가 되었고, 가남풍은 황후가 되었다. 가남풍은 흉악하고 패역하여 무도황후의 부친인아버지인 [[양준 (서진)|양준]]이 정권을 쥔 것을 싫어하여 양준이 반란을 일으켰다 무고하고 초왕(楚王) [[사마위]](司馬瑋)와 동안왕(東安王) [[사마요 (서진)|사마요]]에게 거짓 조서를 내려 양준을 죽이도록 하였다. 당시에 궁궐 안팎의 소식이 끊어져 무도황후는 비단 위에 글자를 써서 성밖으로 쏴 보냈는데 그 위에 ‘태부(太傅, =양준)를 구하는 자에게 상을 내릴 것이다’라고 썼다. 가남풍은 이로 인해 황태후가 양준과 더불어 반란을 일으켰다고 선포하였다.
 
양준이 죽은 후 조서를 내려 후군장군 순회(荀悝)에게 태후를 영녕궁(永寧宮)으로 보내라고 명하였다. 특별히 황태후의 어머니인 고도군 방씨(龐氏)의 생명을 보존하여 황태후와 같이 거처하도록 하였다. 가남풍은 군공과 관리들에게 태후를 모함하도록 지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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