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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의 역사]]와 동기화 필요-->
[[파일:Endeavour replica in Cooktown harbour.jpg|right|thumb|250px|[[제임스 쿡]]의 인데인버 호 복제]]
뉴질랜드를 처음으로 찾은 유럽인은 [[1642년]] 남섬 서해안에 도착한 네덜란드의 [[아벌 타스만]]이었다. 그는 이곳을 네덜란드에 위치한 [[제일란트 주]]의 이름을 따서 '노바젤란디아'라고 명명하였으며, 뉴질랜드는 이 말의 영어식 번역이다. 타스만 이후 뉴질랜드를 찾은 사람은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이었다. 쿡 선장은 1769~1777년에 걸쳐 여러 차례 이 지역을 답사하였다. 이어 [[1814년]] 런던에서 선교사가 와서 개신교 선교를 시작하였다. 그 무렵 이곳은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 주]]의 식민지로서, 고래와 바다표범잡이의 기지로 이용되고 있었다.
 
=== 유럽사람들의 방문 ===
[[1840년]] [[마오리족]]은 자신들을 보호해주는 대가로 뉴질랜드의 통치권을 영국에 양도하는 [[와이탕이 조약]]을 체결하였다. 그 이후부터 뉴질랜드회사, 오타고협회, 캔터베리협회 등을 통하여 각지에서 이민자가 건너오기 시작하였다. [[1880년대]] 초 냉동선이 개발되자 오지에서도 농목업이 발전하였고, [[1852년]]에는 뉴질랜드 헌법에 따라 뉴질랜드 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다.
뉴질랜드를 처음으로 찾은 유럽인은 [[1642년]] 남섬 서해안에 도착한 네덜란드의 [[아벌 타스만]]이었다. 그는 이곳을 네덜란드에 위치한 [[제일란트 주]]의 이름을 따서 '노바젤란디아'라고 명명하였으며, 뉴질랜드는 이 말의 영어식 번역이다. 타스만 이후 뉴질랜드를 찾은 사람은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이었다. 쿡 선장은 1769~1777년에 걸쳐 여러 차례 이 지역을 답사하였다. 이어 [[1814년]] 런던에서 선교사가 와서 [[개신교]] 선교를 시작하였다. 그 무렵 이곳은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 주]]의 식민지로서, 고래와 바다표범잡이의 기지로 이용되고 있었다.
 
=== 와이탕이 조약 ===
그러나 영국의 식민화가 진행됨에 따라서 토지강탈과 관련하여 마오리족과 영국 간에 분쟁이 생겼고, 1843~1870년 사이에는 두 차례에 걸쳐 마오리 전쟁이 일어났다. 이에 영국은 마오리족에 대해 유화정책을 펴는 한편, 식민지 회의에 마오리족 대표를 참가시키는 등 온건파 회유에 노력하여, [[1870년]]부터는 인종분쟁이 약해지고 마오리족의 영국화가 시작되었다. 이처럼 마오리족과의 공존관계 설정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고자 한 노력은 다른 식민지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해법이였는데 이는 본토와의 거리가 엄청난데다가 특별한 지하자원등의 메리트가 없기 때문인 영향이 컸다. 그 후 뉴질랜드는 개척이 진전됨에 따라 [[1907년]] 영국의 자치국이 되었다가 [[1947년]] 11월 25일 독립하였다. 제1·2차 세계대전 때에는 영국 본국과 함께 연합국의 일원이 되어 참전·활약하였다.
[[1840년]] [[마오리족]]은 자신들을 보호해주는 대가로 뉴질랜드의 통치권을 영국에 양도하는 [[와이탕이 조약]]을 체결하였다. 그 이후부터 뉴질랜드회사, 오타고협회, 캔터베리협회 등을 통하여 각지에서 이민자가 건너오기 시작하였다. [[1880년대]] 초 냉동선이 개발되자 오지에서도 농목업이 발전하였고, [[1852년]]에는 뉴질랜드 헌법에[[헌법]]에 따라 뉴질랜드 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다.
 
=== 원주민과 영국의 분쟁 ===
[[1949년]] 7월 한국을 정식 승인하였으며, [[1950년]] [[한국전쟁]] 때에는 총 5,350명이 영국 연방으로 참전하였다. 대한민국과는 [[1962년]] 외교관계가 수립되었다. 또한 1964~72년까지 [[베트남 전쟁]]에 군대를 파병하였다.
그러나 영국의 식민화가 진행됨에 따라서 토지강탈과 관련하여 마오리족과 영국 간에 분쟁이 생겼고, 1843~1870년 사이에는 두 차례에 걸쳐 마오리 전쟁이 일어났다. 이에 영국은 마오리족에 대해 유화정책을 펴는 한편, 식민지 회의에 마오리족 대표를 참가시키는 등 온건파 회유에 노력하여, [[1870년]]부터는 인종분쟁이 약해지고 마오리족의 영국화가 시작되었다. 이처럼 마오리족과의 공존관계 설정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고자 한 노력은 다른 식민지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해법이였는데 이는 본토와의 거리가 엄청난데다가 특별한 지하자원등의 메리트가 없기 때문인 영향이 컸다. 그 후 뉴질랜드는 개척이 진전됨에 따라 [[1907년]] 영국의 자치국이 되었다가 [[1947년]] 11월 25일 독립하였다. 제1·2차 세계대전 때에는 영국 본국과 함께 연합국의 일원이 되어 참전·활약하였다.
 
=== 자치, 독립 ===
[[1951년]]에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미국]]은 공식적으로 [[태평양 안전 보장 조약]](ANZUS Treaty)을 체결했다. 이는 태평양 지역 방어를 위한 군사동맹이다. [[1985년]]에는 비핵화지대(Nuclear freezone)을 선언하였으며 1985년 남태평양 국가들과의 비핵화선언인 라로통가 조약(Treaty of Rarotonga)을 체결했다. [[1987년]] 데이빗 레인지가 이끄는 노동당에 의해 뉴질랜드 비핵화지대 선언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결과적으로, 미국 핵추진함에 대한 뉴질랜드 기항불허로 이어져 ANZUS조약의 권리가 중지되기도 했다. [[2006년]] 기준 노동당(Labour Government) 헬렌 클라크 총리는 야당인 국민당(National Party)의 지지도 함께 이끌며 뉴질랜드 비핵화지대(Nuclear-free zone)의 입지를 고수하고 있다.
그 후 뉴질랜드는 개척이 진전됨에 따라 [[1907년]] 영국의 자치국이 되었다가 [[1947년]] 11월 25일 독립하였다. 제1·2차 세계대전 때에는 영국 본국과 함께 연합국의 일원이 되어 참전·활약하였다. [[1949년]] 7월 한국을 정식 승인하였으며, [[1950년]] [[한국전쟁]] 때에는 총 5,350명이 영국 연방으로 참전하였다. 대한민국과는 [[1962년]] 외교관계가 수립되었다. 또한 1964~72년까지 [[베트남 전쟁]]에 군대를 파병하였다.
 
=== 안전조약 ===
[[1951년]]에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미국]]은 공식적으로 [[태평양 안전 보장 조약]](ANZUS Treaty)을 체결했다. 이는 태평양 지역 방어를 위한 군사동맹이다. [[1985년]]에는 비핵화지대(Nuclear freezone)을 선언하였으며 1985년 남태평양 국가들과의 비핵화선언인 라로통가 조약(Treaty of Rarotonga)을 체결했다. [[1987년]] 데이빗 레인지가 이끄는 노동당에[[사회민주주의 정당 목록|사민주의 정당]]인 [[노동당]]에 의해 뉴질랜드 비핵화지대 선언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결과적으로, 미국 핵추진함에 대한 뉴질랜드 기항불허로 이어져 ANZUS조약의 권리가 중지되기도 했다. [[2006년]] 기준 노동당(Labour Government) 헬렌 클라크 총리는 야당인 국민당(National Party)의 지지도 함께 이끌며 뉴질랜드 비핵화지대(Nuclear-free zone)의 입지를 고수하고 있다.
 
== 지리 ==
== 환경 ==
{{본문|뉴질랜드의 환경}}
 
=== 국립공원 ===
전국적으로 13개의 국립공원을 갖고 있으며 이중 [[통가리로 국립공원]]과 [[테와히포우나무 국립공원]]은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특히 통가리로는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국립공원이다. 또한 13곳의 해양보호구역이 지정되어 있다.여타 지역에서는 이미 사라진 [[신생대]], [[중생대]]의 생물이 많이 발견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약 8천5백만년 전인 [[백악기]]때부터 다른 대륙과 격리되어 온 직접적인 결과이다. 이 같은 격리 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뉴칼레도니아]]와 함께 유일하게 [[뱀]]이 없는 지역이다.
 
=== 새들의 나라 ===
최초의 [[포유류]]는 두 종의 [[박쥐]]였다. 뱀이 없는 나라(동, 철 성분 등이 다량 함유되어 있고, 습기가 많아 서식하지 못함) 뉴질랜드는 포유류보다 새들의 종류가 많아 약 250종의 새들이 서식하고 있다. 공통솔꼬리주머니쥐는 유럽 정착민들이 1850년대 가죽을 이용할 목적으로 데려왔으나 천적이 없고 번식력이 좋아 현재 약 7천만 마리가 살고 있어 해로운 동물로 분류되어 정책적으로 없애고 있다.<ref>Montague, T.L. (2000): ''[http://www.mwpress.co.nz/store/viewItem.asp?idProduct=147 The Brushtail Possum: Biology, Impact and Management of an Introduced Marsupial]''. Manaaki Whenua Press. Accessed 8 June 2013.</ref> 식물 중에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부를 수 있는 [[카우리 나무]]로 (전 국토의 4%) 약 40m, 가지가 20m나 된다.
 
=== 고유동식물 보호 ===
[[파일:TeTuatahianui.jpg|thumb|left|150px|뉴질랜드 국조인 [[키위 새]]]]
환경보호 활동에 적극적인 뉴질랜드 사람들이지만 그들에게도 그 해결이 쉽지 않은 숙제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사람들의 무관심과 무지로 인해 사라져가고 있는 고유 동식물에 대한 대책이다. 사람들이 이주한 이후 낮은 지대의 늪과 습지대에 사는 고유 동식물 85%가 멸종되었다. 또한 800종 이상의 생물들이 심각한 생존 위험에 처해 있다. 뉴질랜드의 상징인 [[키위 새]] 역시 그렇다. 북쪽에 사는 갈색 키위는 멸종위기에 있으며 다른 키위들은 해마다 6% 정도의 감소를 보이고 있다. 뉴질랜드에서 진화하고[[진화]]하고 생존했던 새는 모두 93종이었으나 이중 43종이 멸종되었고[[절멸|멸종]]되었고, 37종은 멸종의 위험에 처해 있다. 이와 같은 고유 생태계의 변화는 주로 서식지의 파괴와 분열, 그리고 해충과 잡초 때문이다. 특히 해충은 뉴질랜드의 생태계와 경제에 심각한 피해를 준다. 외국에서 들어온 [[해충]]과 잡초들은 뉴질랜드 고유의 생물들을 [[멸종]]으로 몰고 간다.
 
이 때문에 뉴질랜드 검역당국은 외국에서 입국하는 사람과 화물에 대해 [[검역]]을 철저히 한다. 피해를 주는 동식물의 유입을 막기 위해서이다. 생태계에 나쁜 영향을 주는 것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고양이]], [[개]], [[흰족제비]], [[주머니쥐]]와 같이 외국에서 유입된 동물들이다. 이들은 뉴질랜드에 살고 있던 동물이나 꽃 등에 악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면 해치는 동물이 없어 날지 못해도 사는 데 지장이 없었던 [[모아새]](멸종)나 [[키위새]]는 이들 외래종에게 먹히기 때문에 생존의 위기에 있는 것이다. 뉴질랜드는 지난 60년까지는 고래를 잡았지만 지금은 열렬한 고래보호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