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로-이집트 수단: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12번째 줄:
|국가=[[God Save the Queen|하느님, 여왕 폐하를 지켜주소서]]
|지도_그림=Anglo-Egyptian Sudan.png
|수도=[[하르툼]](법적수도)<br />[[카이로]](사실상)
|수도위치=
|공용어=[[영어]], [[아랍어]]
|정부형태= 영국과 이집트의 공동 통치[[공동통치령]]
|지도자_칭호=
|지도자_이름=
54번째 줄:
=== 마흐디스트 혁명 ===
영국군의 이집트 및 수단 정복은 이집트와 수단의 민족주의자들을 실망시켰다. 북부 이집트에서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수에즈 운하를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영국군이 주둔하게 되자 튜피크와 그의 유럽 지지자들에 대한 반대 세력이 이집트에서 방해를 받기 시작했다. 대조적으로 수단에 주둔한 영국군 병력은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수단 민족주의자들은 폭동을 일으키기 쉬웠으며, 실제로 그러한 폭동이 발생했다. 무함마드 이반 압달라가 이끄는 수단 반란군은 종교적이자 정치적인 성격을 지녔다. 압달라는 영국군을 쫓아내고자 했을뿐만 아니라, 서구 편향적인 이집트 왕국을 전복시키려했다. 압달라는 이집트 민족주의자들의 지원을 얻어 튜피크를 사로잡았고 영국군을 몰아내는데 거의 성공했다. 이 반란은 [[하르툼]]의 함락과 [[찰스 조지 고든]]의 죽음으로 1885년 끝났다. 압달라의 공격으로 수단 대부분 지역에서 이집트 및 영국군은 철수했다. 압달라의 종교적 정부는 수단 전역에서 [[샤리아]]를 적용시켰고, 영국군이 이집트와 수단에서 완전히 철수할 때까지 무장투쟁을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르툼 함락 6개월 후에 압달라가 죽었지만 그의 승계자였던 압둘라히 이븐 무하마드는 1887년 [[에티오피아 제국]]을 침공해 [[곤다르]]까지 진출했고, 1889년 북부 수단고 이집트의 지배자로 남았다. 압둘라히의 정권은 예전 투르크 세력과 수단 부족 연맹체에 의해 붕괴되었다.
== 공동통치령 시대 ==
 
[[1934년]]에 [[이탈리아령 리비아]]에 [[사라 삼각지대]]를 팔았다.
{{대영제국의 옛 식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