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공작 계획: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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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사는 5.18 등 주요 사건 발생시에도 간담회를 열어 언론 협조를 유도했다. ‘광주소요사태의 조속한 진정과 질서회복 유지를 위해 중진언론인을 초청, 현지실태를 취재토록 유도하고 국민계도를 촉구토록 유도’한다는 명분 아래, 신문 방송 통신사의 사회부 기자 32명, 국방부 출입기자 17명 등 합계 49명을 2처 2과장 중령 이용린이 인솔해 1980년 5월 24일 광주일원 소요현장을 취재하도록 했고, ‘광주소요사태의 조속한 진정과 질서회복 유지를 위해 중진언론인을 초청, 동사태의 실상을 올바르게 인식시켜 국민계도를 촉구토록 유도’한다는 목적으로, 신문 방송 통신사의 사장, 편집국장, 정치부장, 사회부장 각 16명 합계 64명을 4일에 걸쳐 호텔에 초청해 간담회를 가졌다.
 
이러한 언론인 접촉 공작은 1980년 8월 하순까지 추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파악된 언론인들의 동정, 작성된 [[언론통폐합|언론사 강제 통폐합]] 관련 시안들은 각각 언론인 강제 해직, [[언론사 강제 통폐합]] 과정에 참고자료로 활용됐다.<ref>국방부 과거사위 신군부의 언론통제사건 조사결과보고서 32~42쪽</ref>
 
== 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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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령부]]
*[[대한민국 중앙정보부|중앙정보부]]
*[[언론통폐합|1980년 언론통폐합]]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
*[[5·17 쿠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