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치아노 베첼리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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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치아노 베첼리오'''({{llang|it|Tiziano Vecellio}}, 1488-90년경 ~ [[1576년]])는 북이탈리아 피에베 디 카도레에서 출생한 [[이탈리아]]의 전성기 [[르네상스]] 시대에 활약했던 [[화가]]이다.
 
그의 창작 시기는 [[베네치아 공화국]] 회화의 황금기와 맞아 떨어졌다. 그 당시 베네치아는 경제적, 문화적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티치아노는 9살이 되었을 때 베네치아로 가서 젠틸레 벨리니와 조반니 벨리니 형제로부터 사사를 받았다. 1513년 그는 산 사물엘레에 자신의 작업장을 열었고, 유럽 전역에서 찬양을 받는 화가로 발전했다. 1515년경에는 명백한 베네치아 화파의 거장이 되어 지식인들의 찬사를 들었고 소장가들의 찬미를 받았으며 귀족이나 궁정의 부름을 더 많이 받게 되었다. 1520년대에 그의 명성이 퍼져나가기 시작하면서 베네치아에서 주로 의뢰를 받는 것 외에도 , 피에트로 아레티노를 사실상의 ‘대행인’삼아 유럽에서 가장 가광받는각광받는 초상화가로서 입지를 세웠다<ref>{{서적 인용|url=|제목=천년의 그림여행 p128|성=스테파노 추피|이름=|날짜=|출판사=|확인날짜=}}</ref>. 1533년 그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였던 [[카를 5세]]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고 그의 궁정 화가로 임명되었다. 1545년 티치아노는 교황 [[바오로 3세]]의 초청을 받아서 로마를 방문했다. 1548년과 1550년 티치아노는 카를 5세와 그의 아들 [[펠리페 2세]]를 따라서 제국 의회가 있는 [[아우크스부르크]]에 갔다. 상당히 고령이었던 티치아노가 1576년 [[페스트]]로 죽었을 때 그는, 베네치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화가였다.
 
동시대 사람들로부터 '별 가운데 있는 태양'이라고 불렸던 티치아노는 646점의 작품을 제작한 그사 살던 시대에 다양한 면모를 보이고, 아주 생산적인 화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초상화, 풍경화, 신화적 소재를 다루고 종교적 주제를 담은 작품들을 제작했다. <성스런 사랑과 세속의 사랑>, <성모 승천>, <바쿠스의 축제>,〈우르비노의 비너스〉등이 가장 잘 알려진 작품들이었다. 그의 작품의 특징을 이루는 것은 분명하게 드러나는 색채주의며, 그는 일생 동안 그런 특징을 유지했다. 기나긴 생애의 마지막 무렵 그는 극적인 양식의 단절을 완수했고, 그것은 이미 [[바로크]]적 특성을 향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