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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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
|작위 =[[청나라]]의 [[중국의 황제 목록#청|제4대 황제]]<br/>[[몽골]]의 [[카간]]
|본명 =애신각라현엽아이신기오로 히오완예이(愛新覺羅玄燁)
|재위 =[[1661년]] ~ [[1722년]]
|대관식 =
|별명 =천고일제(千古一帝)
|출생일 =[[1654년]](순치 11년) [[5월 4일]]
|출생지 =[[청나라청 제국]] [[북경]] [[자금성]] 경인궁
|사망일 =[[1722년]](강희 61년) [[12월 20일]] (향년 69세)
|사망지 =[[청나라청 제국]] [[북경]] 창춘원
|매장지 =경릉(景陵)
|배우자 =[[효성인황후]]<br />[[효소인황후]]<br />[[효의인황후]]<br />[[효공인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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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제'''(康熙帝, 순치(順治) 11년 [[음력 3월 18일]] ([[1654년]] [[5월 4일]]) ~ 강희(康熙) 61년 [[음력 11월 13일]] ([[1722년]] [[12월 20일]]))는 [[청나라]]의 제4대 황제(재위 [[1661년]] ~ [[1722년]])이자, 산해관 입관(入關)<ref group="주">[[산해관]]을 넘어 중국 대륙에 들어가 지배하기 시작하였다는 뜻이다.</ref> 이후 통일 황조<ref group="주">중국 대륙과 청의 근거지를 모두 다스리는 의미에서의 통일 황조</ref> 로서 두 번째 황제이기도 하다.<ref group="주">순치제 때 산해관에 입관했기 때문에 순치제 다음 황제인 강희제를 청나라의 두 번째 황제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ref>
 
[[성씨|성]]과 [[휘]]는 '''애신각라현엽애신각라 헌엽'''(玄燁, {{llang|mnc|{{ManchuSibeUnicode|lang=mnc|ᡥᡳᡠ᠋ᠸᠠᠨ<br />ᠶᡝᡳ}}|아이신기오로Aisin-Gioro 히오완예이Hiowanyei}}), [[묘호]]는 '''성조'''(聖祖,{{llang|mnc|{{ManchuSibeUnicode|lang=mnc|ᡧᡝᠩᡯᡠ}}|셩주Šengju}}), [[시호]]는 '''합천홍운문무예철공검관유효경성신중화공덕대성인황제'''(合天弘運文武睿哲恭儉寬裕孝敬誠信中和功德大成仁皇帝, <small>{{소리|Korean-Kangxi posthumous name.ogg|한국어 한자음으로 듣기}}, {{소리|Chinese-Kangxi Posthumous name.ogg|중국어로 듣기}} </small>)이며, 짧은 시호로는 '''인황제'''(仁皇帝, {{llang|mnc|{{ManchuSibeUnicode|lang=mnc|ᡤᠣᠰᡳᠨ<br />ᡥᡡᠸᠠᠩᡩᡳ}}|고신Gosin 후왕디Hūwangdi}})이다.<ref name="청사고6">[http://zh.wikisource.org/wiki/%E6%B8%85%E5%8F%B2%E7%A8%BF/%E5%8D%B76 청사고 본기 권6 聖祖本紀一 ]: 聖祖合天弘運文武睿哲恭儉寬裕孝敬誠信功德大成仁皇帝,諱玄燁,世祖第三子也。母孝康章皇后佟佳氏,順治十一年三月戊申誕上於景仁宮。</ref> [[연호]]는 '''[[강희]]'''(康煕)이다. 또한 [[만주어]]로는 '''얼허 타이핀 한'''({{llang|mnc|{{ManchuSibeUnicode|lang=mnc|ᡝᠯᡥᡝ<br />ᡨᠠᡳ᠌ᡶᡳᠨ<br />ᡥᠠᠨ}}|Elhe Taifin Han}}),<ref group="주">만주어에서 얼허는 ‘강’(康), 타이핀은 ‘희’(煕)를 뜻한다.</ref> [[몽골어]]로는 '''엔크 암갈란 칸'''({{llang|mn|{{MongolUnicode|ᠧᠨᠺᠬ<br />ᠠᠮᠭᠠᠯᠠᠨ<br />ᠻᠠᠭᠠᠨ}}|Enkh Amgalan Khaan}})<ref group="주">몽골어에서 엔크는 ‘강’(康), 암갈란은 ‘희’(煕)를 뜻한다.</ref> 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제3대 황제인 [[순치제]](順治帝)의 셋째 아들인 그는 순치제의 후궁 출신인 [[효강장황후|효강장황후 동가씨]](孝康章皇后 佟佳氏)의 소생으로서 [[자금성]](紫禁城)에서 태어난 첫 청나라 황제이기도 하다.
 
[[1661년]](순치 18년) 부친인 [[순치제]]가 천연두로 붕어하자,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황제로 즉위하여 [[1722년]](강희 61년)까지 61년간 재위함으로써 [[중국]] 역사상 가장 긴 재위기간을 가진 황제이다.<ref>중국사학회(2005), 중국역사박물관 10, 34쪽</ref> 즉위 초에는 어린 나이로 인해 병부상서 [[오배]] 등의 네 명의 보정대신들에게 국정을 일임하였다. [[만주족]]의 예법에 따라 [[1667년]](강희 6년), 14세에 친정을 시작하였으며 2년 뒤에 발생한 오배의 난을 평정하여 실질적으로 조정을 장악하였다. 이후에는 [[1673년]](강희 12년)에 8년 동안 지속된 [[삼번의 난]]을 평정하고 이어 [[1683년]](강희 22년)에 [[대만]]을 청나라에 복속시켰으며 북방의 [[러시아 제국|러시아]]와 [[네르친스크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만주와 연해주 쪽의 국경을 확정하였다. 한편 [[1696년]](강희 35년)에는 청나라에 대항하던 [[몽골]] [[오이라트]]로 친히 원정하여 [[중가르 칸국|중가르]]의 칸 [[가르단]]의 군사를 격파하여 북방을 안정되게 하였으며, [[1721년]](강희 60년)에는 가르단을 지원했던 [[티베트]]에 군대를 보내 정복함으로써 티베트를 청나라 영토에 편입시켰다. 이렇듯 강희제는 오배의 난과 삼번의 난과 같은 재위 전반기의 위기를 극복하고 대외 정책에서의 외교적, 정치적 성공을 거둠으로써 강력한 [[절대 왕정|절대 황제권]]을 수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