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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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표}}
 
'''우크라이나'''({{llang|uk|Україна}}, {{llang|en|Ukraine}})는 [[동유럽]]의 국가이다국가로, 유럽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갖고 있다. 남쪽과 남동쪽으로는 [[흑해]]와 [[아조프 해]], 동쪽과 북동쪽으로는 [[러시아]], 북쪽과 북서쪽으로는 [[벨라루스]], 서쪽으로는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남서쪽으로는 [[루마니아]], [[몰도바]]와 접한다. [[키예프]](Kyiv)는 우크라이나의 수도이며 가장 큰 도시이다. 동유럽 평원과 이어져 있으며 기후는 비교적 온화한 편이다. 공용어는 [[우크라이나어]] 및 [[러시아어]]를 사용하며 인구의 절반(주로 동남부 지역)은 러시아어 사용자이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 공화국 합병|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함에 따라 행정력이 [[크림반도]]에 미치지 못하지만, 국제사회는 대체로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의 일부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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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중반에는 우크라이나 중부에 [[코자크 헤티만국]](Cossack Hetmanate)이 세워져 백년 이상 모스크바 공국(Muscovy)의 압력을 견뎌냈으나 결국 우크라이나는 [[폴란드]]와 [[러시아]]에 의해 분할되었다. 그 후 18세기 후반의 [[폴란드 분할]]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중부와 동부는 [[러시아 제국]]에 합병되고 서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합병되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오스트리아 지배 하의 서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지배 하의 동부 우크라이나가 각각 독립을 선언, [[1920년]]에는1920년에는 동서 통일을 선언했으나 외부 군대의 침략으로 신생독립국 우크라이나는 오래 가지 못하였다. 결국 [[1922년]]에1922년에 서쪽은 폴란드, 동쪽은 [[소비에트 연방]]의 영토가 되었다. 소비에트 연방령 우크라이나는 [[1921년]]-[[~1922년]] 간, [[1932년]]-[[~1933년]] 간 두 차례에 걸쳐 큰 기근을 겪었다. 둘째 기근은 [[이오시프 스탈린|스탈린]]이 집단 농장 체제에 저항이 심했던 우크라이나에 대해 인위적으로 부른 기근으로 [[홀로도모르]](Holodomor)라 불린다. 이로 인한 사망자 수는 적게는 8백만 명에서 많게는 1천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역사}}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소비에트 연방은 폴란드를 침공, 우크라이나 서부를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일부로 만들었다. [[1941년]]에는1941년에는 [[나치 독일|독일]]군과 추축군이 소비에트 연방의 [[적군]]을 쳐부수었다. 소비에트 연방이 '영웅 도시'라 칭한 키예프 전투에서는 66만 명이 넘는 소비에트 연방군이 포로로 잡혔다. 처음에는 우크라이나인들이 독일군을 '해방군'으로 환영했다. 그러나 나치 독일은 곧 대량 학살을 시작하여 [[유대인]]들과 우크라이나인 민간인들을 죽이거나 강제 추방하였다. 마을 전체를 태워 없애기도 하였다. 결국 우크라이나인들은 독일의 지배가 소비에트 연방의 지배보다도 악랄하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전쟁 중과 독일 치하의 민간인 사망자 수는 50만 명이 넘는 유대인들을 포함, 7백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갈리치아 지방에서는 폴란드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끼리 서로 집단 학살을 저지르기도 한 끔찍한 시기였다. 독일과의 전투로 소련군은 약 1천 100만 명의 사망자를 냈는데 그 중 4분의 일(270만 명)이 우크라이나계였다. 우크라이나 민족은 추축국을 상대로 전투를 벌인 첫 민족이 되었고([[카르파티아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으로 인한 피해도 엄청났다.
 
제2차 세계 대전 종결 후 소비에트 연방령 우크라이나는 서쪽으로 확장되어 우크라이나인들이 사는 땅을 거의 모두 포함하게 되었다. [[1954년]]에는1954년에는 우크라이나에 의해 러시아 본토와 단절되어 있던 [[크림 반도]]가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령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니키타 흐루쇼프]]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우애를 과시하기 위해 [[페레야슬라프 조약]](코자크 헤티만국이 모스크바 차르의 보호를 요청)의 300주년을 맞아 우크라이나에 크림 반도를 할양한 것이다. 이는 우크라이나 독립 후 양국 간의 분쟁 소지가 된다.
 
[[1991년]] 우크라이나는 모스크바에서 소비에트 연방 공산당의 쿠데타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후의 혼란 속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이는 결국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를 촉진시켰다. 우크라이나는 [[독립국가연합]]의 창립 회원국이다.
 
현재 우크라이나의 국기는 [[스텝 (평야)|스텝]] 지방의 금빛 밀밭 위 푸른 하늘의 모습을 상징한다고 한다. 청색과 황색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전통적으로 깃발에 많이 쓰던 색이다.
 
[[2005년 1월]]에1월에 [[빅토르 유시첸코]]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우크라이나 역사에 가장 중요한 역사를 기록하였다. {{모호}} 이 당시에는 우크라이나에서 정치가들의 인기가 폭발할 정도였다. {{모호}} [[율리아 티모셴코]]는 2, 3차례나 [[우크라이나의 총리|총리]]로 선출되었다.
 
[[2010년]] [[2월 7일]]에7일에 치러진 [[2010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대통령 선거]]가 실시 되었을 때,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율리아 티모셴코]]를 꺾고 [[우크라이나의 대통령|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이리하여, [[빅토르 유시첸코]]와 [[율리아 티모셴코]]는 나라의 망신거리가 되어간 상태였다. {{모호}} [[2012년]] [[7월 4일]]에 우크라이나 의회에서 러시아어를 지역공용어로 인정하는 법을 통과하고 준 공용어로 인정하는 것을 둘러싸고 충돌이 일어났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5677309 우크라 의회, 러시아어 지역공식어 지정안 통과]</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4590780 우크라이나, 러시아어의 준 공용어 인정법으로 충돌]</ref> 하지만 그 이전에는 러시아어를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는 법안으로 인해 충돌이 일어났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55&aid=0000228480 '어디서 봤는데…' 우크라이나 의회 난투극 망신]</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3&aid=0002397161 의원들 몸싸움으로 난장판 된 우크라이나 국회]</ref> 그리고 [[2012년]] [[8월 8일]]에 야누코비치가 동남부에서 러시아어를 공식언어로 하는 법안에 서명하면서 러시아어는 우크라이나 동남부의 공식언어가 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4652455 우크라 대통령, 동남부 '러시아어 공식 언어' 법안 서명]</ref> 우크라이나는 총선을 치른지 2주만인 [[2012년]] [[11월 11일]]에 여당이 총선에서 승리했다.<ref>[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21112001906807 우크라, 총선 최종 결과 발표..여당 승리 확정]</ref> 우크라이나는 [[2013년]]에 [[EU]]와의 협정이 무산되자 친EU시위가 발생되었고, 시위진압과정에서 부상자가 발생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8&aid=0002211831 우크라이나, 친EU·반정부 시위 거세져]</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38&aid=0002446020 시위 무력진압에 강력 반발… 긴장 높아지는 우크라이나]</ref> [[2013년]] [[12월 8일]]에는 반정부 시위대에 의해 레닌상이 철거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1&aid=0002179645 ‘레닌像’ 파괴한 우크라이나]</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47&aid=0002040993 '유럽' 꿈꾸는 우크라이나, 레닌을 끌어내리다]</ref>
 
[[유로마이단]] 시위가 발생한 결과, 친러 대통령이었던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러시아로 도망하였다. 이로 인해서 친러 성향이 강했던 크림 반도의 크림 자치 공화국이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선언과 함께 러시아로의 편입을 추진하였으며, 그 후 합병을 위한 주민 투표를 실시하였고 마침내 [[2014년]] [[3월 18일]]에18일에 러시아와 크림 공화국 합병 조약에 체결되었다. 유럽연합과 미국 등 서방 세계는 이 합병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러시아에 제재를 가했다. 또한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주는 우크라이나에서 분리를 주장하며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전쟁을 벌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크림 반도의 러시아 합병을 인정하지 않으며, 도네츠크와 루한스크를 비롯한 동부 지방에 대해선 강력한 군사적 행동을 추구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연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경계하고 있다.
 
== 정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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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는 입법, 사법, 행정 등 3권이 분리된 의회민주주의 국가이다. 대통령은 직접 선거를 통해 뽑히며 임기는 5년이며, 중임은 한 번 가능하다. 그 대신 [[대통령]]이 [[총리]]와 내각을 지명하며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 의회 ===
우크라이나 의회는 단원제 최고회의(Verkhovna Rada)이며 450석이 있는데 그중 225석은 전국 유권자의 4% 이상 지지를 얻는 정당에게 비례대로 돌아간다. 나머지 225석은 선거구에서 직접선거로 결정된다. 모든 의원들의 임기는 5년이다. 의회는 총리를 뽑고, 법률을 발의하고, 국제 협정을 비준하며 예산안을 승인한다. [[2015년]] 2월 현재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정렬은 [[2014년]] [[10월 26일]]의26일의 국회의원 총선거 결과 순).
 
;국회(최고회의)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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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
우크라이나는 금융위기와 정국불안으로 대통령 선거가 [[2010년]] [[1월 17일]]에17일에 치러졌으나,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승리를 하였다. 과반 득표가 나오지 않자, 같은 다시, [[2010년]] [[2월 7일]]에7일에 [[2010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결선 투표]] 시작했을 때통해, 이미 결과는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승리를 차지하였다. <ref>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19998 우크라이나 대선, 야당 '야누코비치' 당선 유력] </ref> [[율리아 티모셴코]]는 패배를 맞이하였다. 이로써, [[오렌지 혁명]]의 과정은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오늘날, [[페트로 포로셴코]]가 정식 대통령이 되었다.
 
=== 2004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
{{본문|2004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 행정 구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