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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녕대군 이종'''(誠寧大君 李褈, [[1405년]] [[8월 3일]]([[음력 7월 9일]]) ~ [[1418년]] [[3월 11일]]([[음력 2월 4일]]))은 [[조선 태종]] 임금의 제4적자로 이름은 이종(李褈), [[본관]]은 [[전주 이씨|전주(全州)]]이다.
 
1418년(태종 18) 3월 13일 바로 변한국공(卞韓國公)에 추봉되었으며 시호는 소경(昭頃)이다.
 
==생애==
[[조선 태종|태종]]과 [[원경왕후]]의 넷째이자 막내아들(적자)로, 39세의 늦은 나이에 아들을 본 태종과 원경왕후의 각별한 총애를 받고 자랐다. [[1411년]] 성녕군(誠寧君)에 책봉되었고 [[1414년]] 성녕대군(誠寧大君)으로 진봉되었다. 우애가 깊고, 학문에도 뜻이 있었으나, [[1418년]](태종 18) [[음력 2월 4일]]에 [[홍역]]에 걸려 14살의 어린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부인은 성억의 딸이다. 후에 셋째형인 [[조선 세종대왕|세종]](충녕대군)이 즉위한후, 세종의 셋째아들 [[안평대군]]이 양자로 들어 왔다.
 
"졸(卒)한 성녕 대군 이종은 위(魏)나라 종실(宗室) 풍도공(豐悼公)과 진(晉)나라 종실 요동 도혜왕(遼東悼惠王)과 송(宋)나라 종실 임천 무열왕(臨川武烈王)의 증시(贈諡)한 예에 의하여 나라 이름을 아울러 칭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1418년]] [[3월 13일]] [[예조]]의 특별 건의로, 그는 봉작과 시호를 바로 받아 변한국 소경공(卞韓國昭頃公)에 추봉되었다.
 
부인은 성억의 딸이다. 후에 셋째형인 [[조선 세종대왕|세종]](충녕대군)이 즉위한후, 세종의 셋째아들 [[안평대군]]이 양자로 들어 왔다.
 
그러나 안평대군은 [[1453년]](단종 1) [[계유정난]]에 연루되어 강화도로 귀양갔다가 그 해 [[10월 19일]] 안평대군 일가가 화를 입어 멸문당하고 대군의 부인 성씨 또한 그해 [[10월 22일]] [[경주시|경상도 경주]]로 귀양가 폐출(廢黜, 지위나 작위, 관직을 몰수하고 내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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