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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린네는 어릴 때부터 [[식물]], 특히 꽃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다. 닐스 린네우스는 자신의 아들인 린네와 함께 정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꽃을 좋아하는 자신의 아들에게 꽃을 자주 보여주며 꽃들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덕분에 린네는 식물에 대한 열정과 관심을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키울 수 있게 되었다.
 
칼 린네의 아버지는 린네가 어렸을 때부터 그에게 [[라틴어]], 종교, [[지질학]] 등을 가르쳤다. 칼 린네가 7살이었을 때, 닐스 린네우스는 선생 한 명을 고용하기로 결정했다. 칼 린네의 부모는 그 지역의 자작농의 아들이었던 요한 텔란더에게 린네의 교육을 맡기기로 했다. 안타깝게도 칼 린네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고, 훗날 린네의 자서전에는 요한 텔란더가 ‘아이의 재능을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사라지게 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요한 텔란더는 린네를 2년 정도 가르쳤는데, 이후 그는 [[벡셰]]에 있는 초급 그래머 스쿨(Lower Grammer School) (1717)에 보내졌다. 당시 린네는 공부보다는 식물에 더 큰 관심이 있었기에,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이라기보다는 주로 시골로 식물을 보러 다니는 학생으로서의 생활을 했다. 15세에 최고학년이 된 린네는 교장 선생님이었던 다니엘 란네루스에게 지도받았다. 식물학에 관심이 있었던 교장 다니엘 란네루스는 린네의 식물학에 대한 관심을 알아차리고 린네에게 그의 정원을 관리하게 했다. 또, 그는 린네에게 스몰란드의 주 의사이자 벡셰 [[김나지움]]에서 선생님을 하는 요한 로스만을 소개해주었다. 칼 린네의 식물학에 대한 관심은 식물학자였던 요한 로스만에 의해 크게 키워졌다. 그중에서도 특히 유성 생식을 중점적으로 가르쳤다. 그리고 또 린네가 약학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다.
 
1724년에 벡셰 김나지움에 입학한 린네는 [[그리스어]], [[히브리어]], [[신학]], 그리고 [[수학]]을 본격적으로 배워나갔다. 이 커리큘럼은 성직자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자 하는 아이들을 위해 체계화 된 것이었다. 김나지움에서의 마지막 해에, 칼 린네의 아버지 닐스 린네우스는 그의 아들이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지를 살피고, 선생님들을 만나기 위해 학교를 방문했다. 당황스럽게도 닐스 린네우스는 대부분의 선생님들에게서 칼 린네가 절대 장학생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요한 로스만은 다른 선생들과는 생각이 달랐다. 칼 린네에게 약학에 큰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 요한 로스만은 닐스 린네우스에게 린네를 로스만의 가족과 함께 살게 하면서 [[생리학]]과 [[식물학]]을 배우게 할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닐스 린네우스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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