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징옥: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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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용맹하기가 범과 같아서 [[여진족]]들이 이징옥을 '어금니를 가진 큰 돼지'라 부르며 '큰 범' 김종서만큼이나 두려워하여 감히 그를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였다. 이징옥은 일찍이 오래도록 변방에 근무하고 [[여진족]]을 정벌하는 과정에서 [[여진족]] 사회에까지 명성을 알리고, 일이 여의치 못할 때는 두만강을 건너 여진족을 배경으로 저항하려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여진족]] 지원군과 합세하기 위해 부하들을 이끌고 두만강을 건너려고 [[10월 20일]] [[함경북도]] [[종성군]](鐘城郡)에 머물러 밤을 새울 때, 조정에서 파견한 자에게 설득당한 [[종성군|종성]][[판관]] [[정종 (조선의 무신)|정종]](鄭種)·[[호군]] [[이행검]](李行儉) 등이 이끄는 자객단의 습격을 받고 두 아들과 함께 피살되었다. 향년 55세였다.
 
그의 막내인 셋째 아들 연원(淵源)만이 유모의 등에 업혀 [[경주시|경주]]로 간신히 피신하여 목숨을 건지고 이름을 태엽(台燁)이라 바꾸었으며, 본관은 초산(草山)으로 하여 맥을 이었다(훗날 이연원의 후손들이 본관을 초산에서 본래의 본관인 [[양산시|양산]]으로 환원한다). 현재는 인천 이씨 충강공파로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 사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