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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정보
'''심상훈'''(沈相薰, [[1854년]] ~ ?) [[조선]] 말기의 문신으로 [[수구파]]의 일원이다. 본관은 청송(靑松)이다.
| 이름 = 심상훈<br />沈相薰
 
| 그림 =
그는 [[수구당]]에 속한 인물이었으며 [[1884년]]에 [[갑신정변]]이 일어났을 때 [[개화당]]의 지지자로 위장하고 [[경우궁]]으로 가서 [[명성황후]]와 연락을 취해 [[개화당]] 진상과 정변의 비밀 등을 알려주고 [[청나라]]의 병력 파견을 허락할 것을 제의했다.
| 그림설명 =
| 출생일 = [[1854년]]
| 출생지 =
| 사망일 = ?
| 사망지 =
| 국적 = {{국기나라|대한민국}}
| 학력 =
| 경력 =
| 직업 = 참정대신
| 소속 =
| 작위 =
| 종교 =
| 배우자 =
| 상훈 = {{국기그림|대한제국}} [[대훈위 이화대수장]]
| 웹사이트 =
}}
 
'''심상훈'''(沈相薰, [[1854년]] ~ ?) [[조선]] 말기의 문신으로 [[수구파]]의 일원이다.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순가(舜歌),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그는 [[수구당]]에 속한 인물이었으며 [[1884년]]에 [[갑신정변]]이 일어났을 때 [[개화당]]의 지지자로 위장하고 [[경우궁]]으로 가서 [[명성황후]]와 연락을 취해 [[개화당]] 진상과 정변의 비밀 등을 알려주고 [[청나라]]의 병력 파견을 허락할 것을 제의했다.
[[1896년]]에는 [[아관파천]]이 일어나자 수구파 내각의 탁지부대신이 되었다. 그러나 [[독립협회]]이 탄핵이 대상이 되었고 그는 [[1898년]]에 체직처분을 받게 되었다.
 
== 가계 ==
동지돈녕부사 심의현(沈宜絢)의 손자이며 [[공조판서]] 심응택(沈應澤)의 아들이다. [[흥선대원군]]의 장인인 [[민치구]]의 외손자로서, [[흥선대원군]]이 이모부이고 [[조선 고종|고종 황제]]의 이종사촌이며 [[명성황후]]의 친족이다.
 
== 생애 ==
[[1874년]]([[조선 고종|고종]] 11년)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ref>《고종실록》</ref> [[홍문관]] 교리, [[규장각]] 직각, [[사헌부]] 장령 등을 거쳐,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장호원]]에 피신하고 있던 [[명성황후]]의 밀계를 궁중에 전달하여 청군을 끌어들여 [[흥선대원군]]을 청국으로 납치하게 함으로써 임오군란을 진정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고, [[1884년]] 이조 참의, 군국사무 참의(병조참의), 동지경연관사를 거쳐,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경기도 관찰사(경기 감사)로서 또다시 청군을 끌어들여 독립당의 혁신정부를 전복시키는 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같은 해에는 충청도 관찰사(충청 감사)로 나아가 동학교도들의 탄압에 앞장섰다. 이후에, 이조참판, 협판내무부사(이조참판), [[홍문관]] 부제학, [[규장각]] 직제학, 지경연관사, [[공조판서]], [[이조판서]], [[형조판서]], 우참찬, [[선혜청]] 제조, [[교정청]] 당상, 장례원경, [[탁지부]] 대신(호조판서) 겸 [[의정부]] 찬정(의정부 찬성) 겸 궁내부 대신 서리 겸 군부대신 서리 겸 육군 부장 등을 지내고, [[1897년]] [[대한제국]]이 건국되자, 대한제국 초대 [[탁지부]] 대신이 되었고, 이후에, [[궁내부]] 특진관, [[양지아문]](토지측량관청)의 총재관, [[군부대신]](병조판서) 겸 내부대신 서리 겸 탁지부 대신 서리 겸 호위총관 서리 겸 특명 전권공사를 거쳐, [[내부 (대한제국)|내부대신]](이조 판서), 의정부 찬정을 지냈다. [[1899년]] [[의정부]] 참정대신, 법규 교정소 의정관, [[양지아문]] 총재 겸 전환국 관리관 겸 [[표훈원]] 의정관, 육군 부장 겸 원수부 군무국 총장, 태의원경을 거쳐, [[1901년]] [[의정부]] 참정대신, [[탁지부]] 대신 겸 [[철도원]] 총재 겸 혜민원 총재, 원수부 군무국 총장 겸 탁지부 대신 겸 군부 대신 서리 겸 충청북도 관찰사 겸 [[중앙은행]] 총재 겸 지계 감독을 지냈다. [[1904년]] [[의정부]] 참정대신, 의정부 찬정, 판돈녕원사를 거쳐, [[러일전쟁]] 당시, [[의정부]] 참정대신, [[1905년]] 일본 특파 대사, [[중추원 (대한제국)|중추원]] 의장, 예식원 예식경, 의정부 참정대신 겸 찬모관, 관제 이정소 의정관, [[군부대신]], 경리원경, [[표훈원]] 총재, 강원도 관찰사, 시종무관장, 제실 재정 회의 의원[황실 예산 회의 위원], [[궁내부]] 대신, 경리원경 겸 배종무관장 서리, 궁내부 특진관 등을 지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려고 하자, [[민영환]], [[조병세]] 등과 함께 경복궁에 들어가, 고종 앞에서 을사조약 체결 반대 상소를 올렸으나, 끝내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민영환과 조병세의 뒤를 이어 자결하려 하였으나, 고종의 만류로 자결을 포기하였다.
 
== 수훈 ==
[[1902년]] [[대한제국]] 건국 1등 공신에 책록되고, [[1908년]] 대훈위가 되었다.
 
== 참조 ==
<references />
 
== 함께 보기 ==
* [[명성황후]]
* [[민치구]]
* [[심순택]]
* [[심이택 (1832년)|심이택]]
 
[[분류:1854년 태어남]]
[[분류:몰년 미상]]
[[분류:과거 급제자]]
[[분류:수구파]]
[[분류:조선의 문신]]
[[분류:조선의 정치인]]
[[분류:대한제국의 관료]]
[[분류:대한제국의 정치인]]
[[분류:청송 심씨]]
[[분류:대한제국 고종]]
[[분류:이화대훈장 수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