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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타야 왕국]](1351년~1767년)은 말레이반도까지 그 위세를 떨쳤다. 동쪽으로는 앙코르를 공격해 [[크메르 제국]](802년–1431년)를 위협하였고, 서쪽에서는 미얀마와 대립하였다. [[1431년]]의 시암 군대에 의한 앙코르 약탈 이후, 크메르의 조신(朝臣)들과 힌두교적 관습들이 아유타야 왕국으로 대량 유입되어 세련된 궁정의례와 정비된 행정제도를 만들었으며 크메르의 관습과 종교적 의식들이 시암의 궁정 문화에 수용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 왕족·귀족·일반서민의 사회적 지위를 논넓이로 표시하는 사크티나제도를 확립하였다. 1569년 미얀마와의 전쟁에서 아유타야가 함락되었고, 1584년 중흥의 시조 [[나레수안 대왕]]이 다시 미얀마군을 쳐부수고 타이의 독립을 되찾았다. 아유타야왕조시대에도 해외교역이 성하였다.
[[파일:Sukhothai.jpg|thumb|220px|수코타이 왕국 시대 만들어진 왓 마하탓의 불상]]
=== 타이의태국의 독립과 짜끄리 왕조 ===
[[1767년]] 아유타야 왕국이 버마인들에게 무너졌고 중국계 장군 [[딱신 대왕]](鄭昭)이 곧바로 군대를 정비해 미얀마군을 무찌르고 타이의 독립을 회복하였다. [[딱신 대왕]]은 1768년 방콕 건너편의 대방콕 일부에 속하는 [[톤부리]]를 도읍지로 정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라 라오스·캄보디아까지 세력을 넓혔으며, 그의 뒤를 이어 부장 프라야 차크리(라마 1세)가 왕위에 올라 [[짜끄리 왕조]]는 [[1782년]] 도읍을 방콕으로 옮겼다. 이로써 타이 역사의 현 시기([[랏따나꼬신 시기]])가 시작되었다. [[라마 1세]](재위 1782년 - 1809년)는 타이 세력을 크게 확장해 말레이반도의 켈란탄, 미얀마의 타보이까지 지배하였으며 아유타야왕조의 관행부활에 힘쓰고 옛 관례를 재구성하는 법전공포와 불교재흥에 힘썼다.
 
=== 동남아의 유일한 독립국가 ===
이와 같이 왕조는 4차례 바뀌었으며 현재는 [[짜끄리 왕조]]가 통치한다. 유럽 세력들은 [[16세기]]부터 타이를 방문하기 시작하였다. 19세기 유럽 열강의 진출이 극심하여, 미얀마 등 주변국들이 [[프랑스]]와 [[대영제국]]의 식민지가 되었을 때에도 타이는 독립국으로 계속 존속할 수 있었던 유일한 나라이다. 이것은 19세기 타이에 매우 유능한 통치자가 오랜 기간 통치를 하였고, [[프랑스]]과 [[대영제국]] 사이의 경쟁의식과 긴장감을 이용하는 정치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