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 노근리 쌍굴다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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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노근리 쌍굴다리'''는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건축물이다. 2003년 6월 30일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었다. 1950년 당시 [[미군]]에 의한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이 발생한 곳이다.<ref name="문화재청">[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79,00590000,33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 문화재청</ref>
 
== 개요배경 ==
{{참조|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
이 다리는 경부선 철도 개통과 함께 [[개근천]](愷勤川) 위에 축조된 아치형 쌍굴 교각으로, [[한국전쟁]] 당시 많은 양민들이 피살된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 현장으로 유명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한 달 만인 1950년 7월 26일부터 29일까지 4일간, 후퇴하던 미군이 [[영동읍]] [[주곡리]], [[임계리]] 주민과 [[피난민]]들을 굴다리 안에 모아 놓고 집단 약300여명을 죽이는 학살을 자행하였는데 지금까지도 총탄 흔적(○, △ 표시)이 남아 있어 당시 상황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노근리 쌍굴다리는 [[개근천]](愷勤川) 위에 [[콘크리트|무근콘크리트조]]로 축조된 아치형 쌍굴 교각이다. 1934년 [[경부선]] 열차의 운행을 위해 지어졌다.<ref>[http://www.e-minwon.go.kr:8072/lfmn/RcpsmastR___01.do?p1=4413300590000&RADIO_NO=0 노근리 쌍굴다리],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종목 정보</ref> [[영동역]]에서 하행하여 [[황간역]]에서 3 km 정도 못미치는 지점에 있다.<ref>[https://www.google.com/maps/place/%EB%85%B8%EA%B7%BC%EB%A6%AC%EC%8C%8D%EA%B5%B4%EB%8B%A4%EB%A6%AC/@36.215076,127.879187,18z/data=!3m1!4b1!4m5!3m4!1s0x3565734f78378329:0x9ef9b3fdaed4cf61!8m2!3d36.215076!4d127.8802813 노근리 쌍굴다리], 구글 지도</ref>
 
노근리 쌍굴다리는 [[한국전쟁]] 당시 많은 양민들이 피살된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의 현장이다.<ref name="한겨레21_20001212">[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1228.html 노근리 진실 ‘의도적 은폐’], 한겨레21, 2000년 12월 12일</ref> 전쟁이 일어난 지 한달 뒤인 1950년 7월 25일부터 7월 29일까지 후퇴하던 미군이 [[영동읍]] [[주곡리]], [[임계리]] 주민과 [[피난민]]들을 굴다리 안에 모아 놓고 집단 약 250명에서 300여명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학살하였다.<ref>[http://nogunri.yd21.go.kr/html/kr/nogunri/nogunri_01_01.html 사건개요], 노근리 평화공원</ref> 굴다리에는 지금까지도 총탄 흔적(○, △ 표시)이 남아 있어 당시 상황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 사진 ==
 
<gallery>
오랫동안 알려져 있지 않던 노근리 학살 사건은 1999년 AP 통신 보도로 널리 알려졌고, 그 이후 국내 여러 주요 언론도 보도하였다. 미군이 일으킨 학살이기에 AP 내에서도 보도 결정이 쉽지 않았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11131614011 AP도 ‘노근리학살’ 기사 1년간 보도 못했다], 경향신문, 2008년 11월 13일</ref> 노근리 학살에 대한 보도는 그 이전에도 있었으나 미국 언론이 보도하기 전에는 한국의 주요 언론에서도 크게 다루어 지지 않았다.<ref>차재영, 이영남, [https://www.kacis.or.kr/resource/bbs/temp/1203372494.25_2 한 미 언론의 노근리 사건 보도 비교 연구], 2005년</ref>
Amlou2518 노근리 쌍굴다리.jpg|
 
보도 이후 미국은 사건을 부정하려 하였고<ref name="한겨레21_20001212" />, 조사를 하는 동안 "진지로 접근하는 모든 피난민을 사살"하라는 협조가 공군에 요청된 것이 입증되었음에도<ref name="한겨레2120000821">[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155.html 결과 없는 미군 조사], 한겨레21, 2000년 8월 2일</ref>, 이를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 즉 고의가 아닌 사고로 평가해 비판을 받았다.<ref>[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7487.html "민주주의"라는 작전 외 사람들], 한겨레21, 2014년 7월 17일</ref> 미국은 1년의 조사 이후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는 보고서를 작성하였으나<ref>[https://www.rfa.org/korean/in_focus/46103-20001205.html WP, 미 국방부 조사 결과 미군 노근리 양민 학살 인정], 자유아시아방송, 2000년 12월 5일</ref>, 2017년 6월까지도 공식적인 사과나 보상이 없다.<ref>[http://www.hankookilbo.com/v/91a54d794ab5423e91b4cf339ac115d2 1950년 노근리 사건, 美 사과·보상 아직 없다니 충격], 한국일보, 2017년 6월 2일</ref>
 
== 평화공원 ==
노근리 사건의 진상 규명과 희생자의 명예회복을 위한 노근리 특별법이 재정된 후<ref>[http://nogunri.yd21.go.kr/html/kr/intro/intro_02.html 조성 배경], 노근리 평화공원</ref> 2008년 노근리 쌍굴다리의 보전과 희생자의 추념을 위한 평화공원의 건립이 추진되었다.<ref>[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292825.html 노근리 역사공원 ‘첫 삽’ 떴다], 한겨레, 2008년 6월 11일</ref> 역사공원은 노근리 쌍굴 다리와 인접하여 지어졌으며 기념관과 위령탑, 조각공원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ref>[http://nogunri.yd21.go.kr/html/kr/intro/intro_04.html 조감도 및 시설안내], 노근리 평화공원</ref>
 
노근리 평화공원의 관람은 무료이며 3월에서 10월까지는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11월부터 2월까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방한다.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날과 추석은 휴관한다.<ref>[http://nogunri.yd21.go.kr/html/kr/peace/peace_03.html 관람안내], 노근리 평화공원</ref>
 
<gallery mode= packed-hover heigh=200px>
파일:Amlou2518 노근리 쌍굴다리.jpg | 노근리 쌍굴다리의 전경
파일:Amlou2518 노근리 쌍굴다리2.jpg | 다리에 남은 탄흔
파일:No Gun Ri Peace Park-Memorial Tower.jpg | 위령탑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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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용 분류|No Gun Ri Massacre|노근리 학살}}
* {{문화재청 문화재|79,00590000,33}}
 
== 사진각주 ==
{{각주}}
 
[[분류:충청북도의 등록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