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도밍고 페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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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경제의 파탄의 실질적 책임은 후안 페론에 있지 않고, [[1976년 아르헨티나 쿠데타]]로 집권한 아르헨티나 [[국가 재조직 과정|군사정부]]와 군사정부가 도입한 [[신자유주의]]에 있다는 주장도 있다. 아르헨티나 군사정부는 무분별하게 외자 유치를 했고, 자신들의 집권에 협력한 [[다국적기업]]을 불러들였다. 어느 정도 실속을 챙긴 해외자본과 기업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리자 천문학적인 외채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제파탄이라는 비참한 결과를 가져왔다. <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60327093059&section=05 "아르헨 망친 건 페론 아닌 군부와 신자유주의"]</ref>
 
실제로 페론은 경제개발 보다는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에 비중을 두어 정치를 하였으며 그래서 국민소득의 눈에 띄는 증가는 없을지언정 빈민율만큼은 빠르게 감소해 4%까지 하락시켰다. 아르헨티나의 경제를 본격적으로 파탄낸 장본인은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이다. 당장 비델라는 [[1978년 FIFA 월드컵]]을 개최하기 위해 무리하게 많은 돈을 소모했으며 이 과정에서 여러가지 출처를 알 수 없는 비용이 들어간 것은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이 때문에 [[1978년 FIFA 월드컵]]을 두고 '''아르헨티나가 FIFA 월드컵 우승과 자국의 운명을 맞교환했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또한 후안 페론 시절의 아르헨티나의 빈민율이 4%에 불과한 반면 호르헤 비델라 집권기의 빈민율이 38%라는 엄청난 폭증을 두고 보면 아르헨티나 경제를 망친 건 페론이 아니라 비델라가 맞다.
 
페론 집권 시기의 산업화와 경제 업적을 재평가하는 의견도 있다. 1949년부터 1976년까지 아르헨티나의 국민총생산은 127%의 성장을 기록했고, 개인소득은 232%가 증가했다. 페론은 가장 많은 산업투자를 단행했고, 아르헨티나가 농업국가에서 공업화로 가는 데 이바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