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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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평의회는 국회 기능을 정지시키고 법관의 70%를 교체했다. 또한 좌익 게릴라 소탕을 이유로 많은 사람들을 체포했다. 당시 3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납치·불법구금되고 일부는 실종되거나 살해됐다. 이러한 인권탄압 사건은 [[더러운 전쟁]]으로 불린다. 더러운 전쟁과 인권 탄압으로 국내외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그는 계속 정권을 유지했다. 한편 혼란에 빠진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페론주의]] 대신 시장개방 정책을 추진하여 약간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으나 [[외채]]가 급격히 불어나고 [[인플레이션]] 문제도 더욱 심각해졌다. 이 과정에서 자국 기업의 상당수를 국여오하 시킨 뒤 국영화시킨 기업들을 미국을 비롯한 외국계 기업에 매각하여 사리사욕을 채웠다. [[이사벨 페론]]의 집권 당시에는 [[후안 페론]]의 치세기간부터 꾸준히 빈민율을 감소시켜 비델라가 쿠데타를 일으키기 직전인 1975년에 아르헨티나는 빈민율이 4%까지 떨어뜨렸으나 호르헤 비델라가 쿠데타 후 단 2년 만에 빈민율을 38%까지 폭증시켜 놓았다.
 
비델라식 국가경제운영은 한 곳이 터지면 다른 곳에서 빼다가 메꾸는 방식이었는데 외채 때문에 기업을 매각해 그 외채를 메꾸면 그 기업을 팔아서 생기는 실업율 증가와 이로 인해 국민들이 불만을 터뜨려서 [[FIFA 월드컵]]을 개최해 무마시키고 그러면서 또 그 비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또 자국의 기업을 매각하는 등 막장행각을 보였다. 그리고 안그래도 비델라 때문에 경제가 휘청이기 시작했는데 후임자인 [[레오폴도 갈티에리]]가 [[포클랜드 전쟁]]을 일으키는 바람에 그 전쟁비용으로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결정타를 맞고 말았다. 호르헤 비델라와 레오폴도 갈티에리의 문제가 많은 국가경영으로 인해 아르헨티나는 계속 경제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1978년]] 그는 낮은 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해 [[1978년 FIFA 월드컵|월드컵]]을 개최했다. 군사정부는 국민의 불만을 돌리기 위해 아르헨티나 축구 대표팀의 월드컵 우승을 필요로 했다. 이에 월드컵 조직위원회가 유럽의 강호끼리 같은 조에 편성하고 아르헨티나는 약체 페루와 같은 조에 편성하는 방법을 동원하는 방법으로 조편성을 조작해 아르헨티나를 월드컵에서 우승시켰다는 의혹도 있다. 이로 인하여 잠깐동안 비델라의 지지도가 상승하기도 했으나 월드컵의 열기가 사라지자 다시 그의 지지도는 내려갔다. [[1981년]] 5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