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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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레돈도'''({{llang|es|Jorge Rafael Videla Redondo}}, [[1925년]] [[8월 21일]] ~ [[2013년]] [[5월 17일]])는 [[아르헨티나]]의 [[군인]] 출신 정치인이다. 1976년 [[1976년 아르헨티나 쿠데타|쿠데타]]로 [[이사벨 페론]] [[아르헨티나의 대통령|대통령]]을 축출하고 군사정권의 첫 번째 대통령이 됐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에서 태어났다.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여러 직책을 거치며 군장성으로 승진했고, [[1973년]]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됐다. 1975년 [[이사벨 페론]] 대통령은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를 육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이사벨 페론 정부의 일부 실정을 빌미로 군부는 1976년 3월 [[1976년 아르헨티나 쿠데타|쿠데타]]를 단행해 이사벨 페론 대통령을 몰아내고 군사평의회(Junta militar)를 구성하고, 그를 대통령으로 추대했다. 그는 취임하면서 정치·경제·사회적 혼란이 수습되면 민정 복귀하겠다고 약속했다.
 
군사평의회는 국회 기능을 정지시키고 법관의 70%를 교체했다. 또한 좌익 게릴라 소탕을 이유로 많은 사람들을 체포했다. 당시 3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납치·불법구금되고 일부는 실종되거나 살해됐다. 이러한 인권탄압 사건은 [[더러운 전쟁]]으로 불린다. 더러운 전쟁과 인권 탄압으로 국내외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그는 계속 정권을 유지했다. 한편 혼란에 빠진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페론주의]] 대신 시장개방 정책을 추진하여 약간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으나 [[외채]]가 급격히 불어나고 [[인플레이션]] 문제도 더욱 심각해졌다. 이 과정에서 자국 기업의 상당수를 국여오하국영화 시킨 뒤 국영화시킨 기업들을 미국을 비롯한 외국계 기업에 매각하여 사리사욕을 채웠다. [[이사벨 페론]]의 집권 당시에는 [[후안 페론]]의 치세기간부터 꾸준히 빈민율을 감소시켜 비델라가 쿠데타를 일으키기 직전인 1975년에 아르헨티나는 빈민율이 4%까지 떨어뜨렸으나 호르헤 비델라가 쿠데타 후 단 2년 만에 빈민율을 38%까지 폭증시켜 놓았다.
 
비델라식 국가경제운영은 한 곳이 터지면 다른 곳에서 빼다가 메꾸는 방식이었는데 외채 때문에 기업을 매각해 그 외채를 메꾸면 그 기업을 팔아서 생기는 실업율 증가와 이로 인해 국민들이 불만을 터뜨려서 [[FIFA 월드컵]]을 개최해 무마시키고 그러면서 또 그 비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또 자국의 기업을 매각하는 등 막장행각을 보였다. 그리고 안그래도 비델라 때문에 경제가 휘청이기 시작했는데 후임자인 [[레오폴도 갈티에리]]가 [[포클랜드 전쟁]]을 일으키는 바람에 그 전쟁비용으로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결정타를 맞고 말았다. 호르헤 비델라와 레오폴도 갈티에리의 문제가 많은 국가경영으로 인해 아르헨티나는 계속 경제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