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석현 (1900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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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에 군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조선으로 잠입하였다. 1922년 말에는 의열단원 [[김지섭]]이 [[조선총독부]] 판사 [[백윤화]]의 집에 들어가 군자금을 받으려다가 백윤화의 밀고로 실패한 사건이 발생했다. 유석현도 김지섭과 함께 이 사건에 가담하였다.
 
다시 중국으로 건너갔다가 김지섭, [[김시현 (1883년)|김시현]] 등과 함께 [[베이징]]에서 무기를 마련한 뒤 이를 소지하고 조선으로 돌아왔다. 이 사건 공모자 중에는 현직 경찰인 [[황옥 (1885년)|황옥]]이 포함되어 있었다.([[황옥 황옥의경부 밀고로폭탄사건]]). 의열단의 계획은 발각되어 좌절되었으며, 유석현은 [[1923년]] 3월에 체포되고 징역 8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이 사건을 일본 측에 밀고한 것이 황옥인지, 황옥의 정체가 무엇인지 논란이 분분한데, 유석현은 1983년 [[중앙일보]]에 기고한 회고록에서 황옥은 동지가 맞고 [[권태일]]이 배신자였다고 주장했다.
 
[[태평양 전쟁]] 종전 후에는 [[합동통신]]을 창립하는 등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고, [[광복회]] 고문과 회장을 지냈다. [[1980년대]]에는 [[민주정의당]] 발기위원장과 고문을 역임하며 [[대한민국 제5공화국|제5공화국]] 집권 세력을 지지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