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당: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태그: m 모바일 웹 |
편집 요약 없음 태그: m 모바일 웹 |
||
6번째 줄:
[[전한 원제|원제]] 때 [[승상]] [[위현성]]이 유태공의 종묘를 폐지하려 하였는데, 평당은 이에 반대하였고, 원제는 평당의 말을 따랐다.
이후 사자가 되어 유민들을 [[유주]]로 이주시켰을 때, [[자사 (관직)|자사]]와 [[태수]]들 중 근면한 자를 찾아내어 보고하였고 또 [[발해군|발해]]의 염지(鹽池)를 개방하여 백성을 구제할 것을 건의하였다. 이때 파견된 열한 명의 사자들 중 가장 높은 실적을 쌓아, [[승상사직]]으로 승진하였다. 이후 법에 걸려 [[삭방]]자사로 좌천되었으나, 다시 중앙으로 돌아와
[[순우장]]이 창릉(昌陵; [[전한 성제|성제]]의 능묘) 조성을 멈추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을 때, 평당은 이에 반대하였다. 그러나 결국 조성을 멈추는 쪽으로 결정되었고, 순우장은 공적을 인정받아
[[전한 애제|애제]] 즉위 후, 중앙으로 들어와 [[광록대부
아들 [[평안]] 또한 경서에 밝아 출세하였고, [[전한 평제|평제]] 때 [[승상|대사도]]를 지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