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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을 통일한 후진의 요흥은 394년 황제에 즉위했으나 후진의 군권은 요흥말고도 숙부인 요서와 姚碩徳도 독자적으로 갖고 있었기 때문에 요흥은 항상 2명의 숙부에게 의견을 물으면서 일족의 결속과 국내의 안정에 노력했다.
 
396년 [[북위 (북조)|북위]]의 주력이 [[후연]] 공격에 나섰고, 후진은 북위와의 사이를 둔 오르도스을 점령하고, 399년 내분이 계속되던 [[동진]]으로부터 낙양 등 한수, 회수이북의 여러 성을 빼앗았다. 400년 후진의 姚碩徳은 농서지역으로 진격해 서진을 멸망시키고, 구 서진왕 걸복건귀을 상안으로 이송했다.
 
401년 요흥은 걸복건귀을 완주로 돌려보내어 姚碩徳의 후량 원정에 종사시켰다.같은해 姚碩徳는 후량의 수도 고장을 공격해 항복시키고 후량에 연금되었던 [[구마라습]]을 상안으로 데려왔다. 또한 [[후량]]이 항복한 것에 하서 여러정권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어 [[서량]], [[북량]], [[남량]]은 뒤이어 후진에게 종속했다. 이로써 하서는 후진의 세력권에 들어갔다.
 
402년 [[북위 (북조)|북위]]는 다시 오르도스로 진출해 후진과 적대관계에 들어갔다. 같은 해 북위군이 후진의 영토에 침입한 것을 계기로 요흥은 관중, 하동의 병력을 북위로 보냈으나 주력이 시벽(산서성 양분현)에서 북위군에게 포위당해 대패했다. 이로 인해 후진의 하북 진출은 좌절되었다. 403년 약체화 된 후량은 겨우 정권을 유지했으나 후진 영토로 이주했고, 대신 후진이 고장을 직접 통치하게 되었다. 같은 해 동진이 환현에 의해 찬탈당하자 후진은 이 기회을 노려 다시 회하이북을 석권했다. 또한 405년 姚碩徳이 진령을 넘어 후구지를 항복시켰다. 이 시점에서 후진은 최대영토을 가지게 되었다.
 
405년말 환현을 물리치고 [[동진]]의 실권을 장악한 [[유유]]는 그 강대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잃어버린 영토을 회복하기 위해 나섰다. 유유는 후진에게 한수 유역의 12군을 돌려줄것을 요구하였고, 요흥은 유유와의 대결을 피하기 위해 이것을 승낙했다. 406년 남량의 압력에 굴복해 양주 고장을 양도하게 되어 하서에 대한 영향력을 잃었다.